고창 고인돌박물관에 다녀오다.
2024년 10월 13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10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두 번째 답사지로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고창읍 도산리 676)에 있는 고인돌박물관에 다녀왔다. 고인돌박물관은 2008년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고인돌박물관이 있는 이곳 고창군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조밀한 고인돌 분포지역으로 기원전 4~5세기쯤에 축조된 동양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인 죽림리, 상갑리 일대에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인돌은 2000년에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세계유산 소개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들어진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며, 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나뉘어 분포하고 있다.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형식의 다양성과 밀집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 세 지역의 고인돌은 고인돌 문화의 형성 과정과 함께 한국 청동기시대의 사회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의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고인돌은 기원전 1000년경 동아시아 선사시대의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 티베트, 쓰촨, 간쑤와 같은 중국 서부와 산둥반도, 일본 규슈 북서 지방과 같은 해안 지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창 죽림리 고인돌 유적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순의 고인돌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6세기~5세기경에 만들어졌다. 강화 고인돌 유적이 만들어진 연대를 추정하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은 보통 거대한 덮개돌을 지탱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굄돌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고인돌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중요 인물의 시신 또는 유골 위에 세운 단순한 무덤방으로 알려져 있다. 흙무덤이 고인돌을 덮고 있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풍화작용과 동물들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유골을 가족 공동묘지에 묻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제단으로 쓰였을 수도 있다. 고인돌은 보통 높은 기념물 위에 있는 고지대의 묘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고인돌을 세운 사람들이 낮은 곳에 있는 정착촌에서 고인돌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 -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다. 예전에는 지석묘라는 용어도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고인돌로 부르고 있다. 고인돌을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탁자식 고인돌(북방식으로 불리던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남방식으로 불리던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무지석식으로 불리던 고인돌), 지상석곽식 고인돌로 구분한다. 고인돌은 무덤, 묘역을 상징하는 묘표석, 제사를 지내는 제단 등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무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우리나라 고인돌은 다른 나라의 고인돌과 달리 사람뼈와 함께 부장품이 출토된다는 측면에서 무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유럽 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3년 영국의 부영사 칼스(Carles) 의해서이다. 이 시기에 최남선, 손진태, 한흥수 등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초보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고인돌에 관한 연구는 원삼국시대 이전의 고조선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에게는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생각된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요동 지방과 만주 지방 등에 주로 존재하는 고인돌은 어쩌면 우리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약 7만여 기로 추정하고 있고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중국의 요령 지방에 316기가 있고, 일본 규슈 지방에 6백여 기가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전역에는 4만여 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지역에 1만4천여 기가 있고, 전남 지역에는 2천2백여 곳에 무려 2만여 기가 발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