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백제불교도래지에 다녀오다.
2024년 10월 13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10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세 번째 답사지로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백제문화로 203(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834)에 있는 백제불교도래지에 다녀왔다. 이곳 백제불교도래지는 2006년 5월 13일에 문을 연 곳으로 1만 4천여 제곱미터(약 4,230평)의 규모로 사면대불상(四面大佛像), 부용루(芙蓉樓), 탑원(塔園), 간다라 유물관 등이 있다.
서기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인도 간다라(현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일부에 걸치 지역) 출신의 승려였던 마라난타 존자께서 불경을 가지고 중국 동진에서 이곳 법성포로 건너와 백제에 첫발을 디딘 곳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마라난타 존자는 이곳을 거쳐 백제 불교를 최초로 전래한 뒤 불갑사(佛甲寺)를 개창하신 분이다. 전남 영광군의 불갑사와 나주시의 불회사(불호사),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의 불지사도 마라난타 존자께서 지은 절이라는 전승이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역사를 보면, 고구려에는 서기 372년(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교를 전하였고, 백제에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서기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마라난타 존자에 의해 전래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불교가 가장 먼저 도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는 제13대 미추왕(味鄒王) 2년(263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했다는 설과 19대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전래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527년(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이 된 점을 보면, 고구려나 백제보다 늦게 전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해 보인다.
마라난타 존자께서 백제에 최초로 들어온 지역은 추정이었으나, 1998년 동국대학교 교수진들이 학술연구와 고증을 통해서 현재의 영광 법성포 지역이 백제 불교의 시작지였다는 것을 밝혔고, 전라남도 영광군이 이를 기념하여 현재의 법성포 지역에 백제불교가 최초로 도래되었던 백제불교도래지를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법성포(法聖浦)는 마라난타가 온 뒤로 '성인이 오신 포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마라난타 스님에 관한 나무위키의 자료를 보면, 1996년부터 전라남도 영광군과 불교계에서 합동으로 법성포를 '백제 불교 최초 전래지'로서 기념하고 성역화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라난타 존자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마라난타사와 간다라 유물관 등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영광을 비롯한 전라도 지역은 현재 개신교가 강세인 동네다 보니, 마라난타 존자상을 세울 때 현지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좀 있었다고 한다.
개신교인 2천 명이 모여서 반대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던 김봉열 당시 영광군수는 본인이 장로교 집사(!)였으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있자 본인이 가진 집사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오히려 현지 가톨릭계에서는 원불교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업의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고 찬성한다."며 지지했다고 한다.
백제불교도래지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산꼭대기에 사면대불상과 9층탑을 형상화한 엘리베이터 타워가 있다. 바닷가 길을 걸어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경내를 내려오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면대불상으로 가는 길은 아쉽게도 폐쇄되어 있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탑원(塔園)에 도착한다. 현 파키스탄 북부의 간다라 사원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이다. 중앙에 불탑이 있고 주위에 빙 둘러서 20여 분이 넘는 불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있는 불상들은 서구적인 얼굴의 멋쟁이 불상의 모습이다. 미술사적으로 간다라 불상이다.
간다라 불상은 서기 1세기경에 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지역의 간다라 지방을 통치하던 쿠샨 제국에서 불교를 그리스식으로 표현한 간다라 미술이 등장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불상이다. 쿠샨 제국 이전에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영어식으로 읽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키며 동방 원정을 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을 정복하게 된다. 그 후 이 지역에는 그리스인들이 와서 살게 되었고,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그대로 조각하는 미술 양식을 전하게 된다. 로마제국과 계속적인 교류를 해오던 쿠산 제국에서 서기 1세기부터 4세기경까지 그리스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의 불교가 만난 간다라 미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탑원을 참배하고 왼쪽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사면대불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설치된 부용루(芙蓉樓)를 둘러볼 수 있다. 2층에는 법당이 있어서 참배도 할 수 있다. 1층 석벽에는 간다라 양식의 부조 조각이 23면에 걸쳐 조각되어 있다. 부처님의 전생 인연담과 일대기가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다. 이곳 부용루에서 바라보는 사면대불상도 멋지고, 앞쪽으로 펼쳐진 법성포 다리를 배경으로 하는 법성포구의 멋진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부용루에서 탑원 쪽으로 다시 돌아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간다라 유물관이 있다. 건물 자체도 간다라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진 유물관으로 들어가면 입구에서 마라난타 존자상을 만난다. 이곳 유물관에는 대승불교 문화의 본 고장인 간다라의 서기 2세기경부터 5세기경 사이에 조성된 간다라 불상과 부조 등 진품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정말 서구식으로 멋진 모습의 불상들을 만날 수 있다.
간다라 유물관을 관람하고 해변 쪽으로 더 내려가면 불교도래지 정문에 해당하는 상징문을 만난다. 백제불교도래지의 일주문 역할을 하는 기념물로서, 간다라 양식의 건축 개념을 도입하여 건립된 아치형 문이다. 우리나라의 솟을삼문처럼 가운데 통로는 높고 양쪽 두 문은 조금 낮고 작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도래지 전체를 조망하고 법성포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고 해변가로 개설되어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처음에 출발했던 주차장에 도착한다.
나는 이번 문화탐방을 통해 백제불교도래지가 이곳에 있는지를 처음 알았고, 간다라 불상의 매력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멋진 답사지를 선정하신 한밭문화원의 향심화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문화탐방을 위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라 항상 고마움을 느끼지만, 이번에 좋은 문화탐방지를 선정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도 꼭 가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 백제불교도래지에 가기 위해서는 굴비의 고장인 법성포를 지나게 된다. 길가 간판의 90% 정도가 굴비를 파는 간판인 것도 큰 볼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