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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1996), 『법화경 총설』을 읽다.

아진돌 2024. 2. 19. 19:11

박혜경(朴慧耕)(1996), 『법화경 총설』, 서울: 도서출판 삼양, 불기 2540(1996)년 9월 14일 발행.
 
2024년 2월 11일 설 명절 휴일 동안에 무설정사 주지 스님이신 혜경 스님의 『법화경 총설 (영원한 생명의 노래)』를 읽었다. “영원한 생명의 노래”라는 부제가 멋지다. 설 명절 연휴 전에 한글본 『묘법연화경』을 읽으며 의아했던 점들을 풀기 위해 연휴 첫날에는 페이융(2015)의 『인생이 한결 홀가분해지는 법화경 마음공부』를 읽었고, 조금 미진하여 혜경 스님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법화경』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풀렸고 왜 수많은 사람들이 독송하고, 필사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은 “이 『법화경』은 ‘믿음’에 의해서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한 의미로는 기독교의 신약성서가 ‘證言의 書’라고 불리는 것처럼 이 『법화경』은 ‘信仰의 書’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신다. 이 명쾌한 설명으로 『묘법연화경』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들이 환하게 밝아졌다.
 
스님은 서문에서 “불교의 기본 사상인 《반야경》을 기저로 하여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굳은 믿음을 간직하며 실천하도록 이 ‘영원한 생명의 노래’ 즉, 『법화경 총설』을 인쇄에 부치는[上梓(상재)] 바이다.”라고 출판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화경 총설』은 쿠마라지바(鳩摩羅什)가 번역한 『묘법연화경』을 기본 텍스트로 하고 세종왕조 『묘법연화경(諺解本 國譯藏經)』과 산스크리트 『법화경』 영역본(옥스포드 발행, 케른 역) 등을 참고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법화경』의 원래 이름은 산스크리트 즉, 범어(梵語)의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 Pundarika-sutra)이다. 『묘법연화경』은 서기 406년에 구마라집이 번역한 경전으로 교학적으로는 중국 수(隋)나라(581~618) 시대의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 智顗, 538~597)가 조직한 천태교학(天台敎學)의 기본 경전으로 법화-천태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법화경』에서는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3승을 방편으로 규정한다. 앞의 둘을 2승이라 하여 소승(小乘, hinayana, 낮은 가르침), 보살승은 대승(大乘, mahayana, 위대한 가르침)이라 한다. 3승은 방편으로서 잠정적인 존재이며 진실로는 불승(佛乘, buddha-yana) 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일승(一乘, 유일한 가르침)이라 부르고 불승과 일승을 결합하여 일불승(一佛乘)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스님은 『법화경』은 대승불교 경전이면서 이런 성문2승(聲聞二乘)을 등장시켜 설법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 경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법화경』의 일승법은 바로 불교의 통일원리[妙法]임과 동시에 모든 사상의 통일 원리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법화경』 28품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씀의 배경과 관련된 불교 이론을 설명해주고 있다. 경전에서 설하신 비유들에 관한 설명을 명쾌하게 해주고 있다. 하나의 예로, <化城喩品>에서 현대인들에게는 허무맹랑하고 신화적으로 보이는 과거세를 이야기하신 것을 제자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보물은 가까운 곳에 있다. 앞에 있는 이 성은 진실한 것이 아니며, 내가 임시로 환상으로 만들었다.”라고 설하시며, 화성의 비유를 끝맺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 혜경 스님은 “미지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면 치밀한 이론으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신화나 전설이나 비유가 훨씬 알기 쉽다. 그런 사실을 석존을 비롯하여 고대의 인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기를 받는 제자들도 자기 속에 숨겨져 있는 불성에 눈뜬 기쁨과 감격을 비유를 들어 이야기 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법화경』은 드라마로 엮어져 있음을 수차례 언급한 바이다.”라고 강조한다. 이 드라마 중의 하나하나의 모티브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 즉, 진리를 믿는 것이며, 이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경전을 읽으며 “아! 감사하다.”라는 감격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제아무리 천만 권의 경전을 읽고 온갖 교리를 외우고 있더라도 그것은 불교학에 통달하고 있을 따름이지 부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설명이 마음에 콕 박힌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 “성불 하십시오!”
 
책의 내용이 일부 중언부언되는 점도 있지만 『법화경』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믿고 이해하고 수행하고 증득하여 깨달음으로 가듯이 부처님 말씀을 믿고 제대로 이해하여 맹신적으로 믿는 일을 피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이 책은 이미 절판되어 있다. 대전의 시립도서관에서도 한밭도서관에만 한 권이 비치되어 있다. 책을 빌려 읽으며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공공 도서관의 책에 많은 밑줄이 처져 있고 형광펜으로 줄을 친 흔적들이 많아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예의를 안 지키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작은 배려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더욱 안타깝다. 아상(我相)에 사로잡힌 결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