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1989), 송은경 옮김, 『남아 있는 나날』, (주)민음사, 1판1쇄 2009.7.13. 4판3쇄 2022.12.8.
2025년 1월 30일 설연휴를 맞아 노벨 문학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9년 작품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 The Remains of the Day 』 를 번역한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다. 책의 뒷 커버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영국 계급사회의 상징이었던 위대한 집사', '인생의 황혼 녘에야 발견한 일과 사랑의 참된 의미, 그 허망함에 관한 기록'에 관한 소설이다. "대를 이어 집사라는 직업에 헌신해 온 스티븐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양차 세계대전 사이 영국 격변기의 모습과 여행길에서 바라본 1950년대 영국의 사회상을 교차한 작품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나가사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인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사하여, 영국에서 대학을 마쳤다. 1989년에 이 작품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후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2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부커상을 수상한 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걸 보면, 부커상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받는 상인 듯하다.
1956년 여름, 달링턴 경의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는 그곳을 새로 인수한 패러데이 어르신의 호의로 영국 서부 지방으로 생애 첫 여행을 떠난다. 육일간의 여행길에서 황혼에 이른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상하는 소설이다.
집사 스티븐스가 일인칭 서술자가 되어, 6일 동안 여행을 통해 접한 풍경들을 설명하는 부분은 가보지 않은 나도 풍경을 짐작할만큼 사실적이다. 여행 이야기 뒤로는 집사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본인의 과거를 회상한다. 더불어 정치적으로 영향이 있었던 달링턴 경의 집사로서 생활하면서 달링턴 홀에서 접했던 정치적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의 영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즉, 세 트랙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집사로 일하며 티격태격하며 정이 들었던 켄턴 양을 만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해변가에서 막 퇴직한 집사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스티븐스에게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라고 말한다. 책의 뒷 커버에서 인용하고 있는 바로 그 귀절이다. 그런데도 스티븐스는 달링턴 홀로 돌아가 새로운 주인을 위해 유머 감각을 늘려서 "내 주인께서 돌아오실 즈음에는 그분이 흐뭇하게 감탄하실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저녁 때까지 책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스티븐스 집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렴풋이나마 "마술에 가까운 솜씨"라는 뉴욕 타임즈의 찬사를 느껴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