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에 대전 한겨레산악회를 따라 남파랑길 34코스를 걸으며, 경남 사천시 박재삼길 27(서금동 101-67)에 있는 박재삼문학관을 둘러보았다. 박재삼 문학관은 삼천포 노산공원 안에 있다. 남파랑길을 걸으며 박재삼 시인을 알게 되었다. 2016년 12월에 치러진 2017학년도 중등교원임용시험 국어과 1차 시험에서 그의 시 '봄바다에서'가 출제되었다고 한다.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선생 등과 관계를 유지했던 삼천포 출신의 시인이다.
위키백과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을 보면, 박재삼(朴在森, 1933.4.10.~1997.6. 8.)은 아버지 박찬홍(朴贊洪)과 어머니 김어지(金於之)의 차남으로 일본 동경부(東京府) 도남다마군(稻南多摩郡) 성촌실야구(城村失野口) 1004번지에서 출생하였고, 1936년 4세 때 가족이 모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 경남 삼천포시 서금동 72번지에 정착하여 성장하였다고 한다. 1946년에 현재의 삼천포 초등학교인 수남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돈이 없어 신설된 삼천포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신문 배달을 하던 중 삼천포여자중학교의 가사 담당 여선생의 도움으로 그 학교 사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삼천포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인 김상옥 선생을 만나 감화를 받고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은 1953년에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 졸업(제1회)하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1953년에 시조 <강물에서>를 모윤숙 추천으로 《문예》 11월호에 발표했고, 1955년 《현대문학》에 유치환 추천으로 <섭리>를, 서정주 추천으로 <정숙>을 발표하며 등단했다고 한다. 문학관에 게시되어 있는 문단의 평가라는 글에 따르면, 박재삼 선생은 사랑의 보편성을 믿고 산 시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재삼 선생의 시는 1950년대의 주류이던 모더니즘 시의 관념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와는 달리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재래적인 정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 주어, 현대전통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노산공원 북쪽 끝에 있는 박재삼 문학관 옆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선생의 동상이 있고, 옆에는 삼천포 서당이었던 호연재 건물이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애기동백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문학관 문을 들어서면 안내공간으로 박재삼 시인이 서있는 사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선생의 흉상과 함께 휘호 등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까지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시인의 태생부터 2000년대까지 시인의 연보가 잘 정리되어 있고, 박재삼 선생이 교유했던 분들이 소개되고 있다.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등 유명 시인들과 소설가 조정래, 바둑기사 조남철과 조훈현 등 다양한 분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선생의 집필실 모형이 있고 입구 쪽 벽에는 박 선생의 유명한 말씀인 "시 창작의 비법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2층에는 선생의 유품들을 모아놓은 다목적실이 있고, 3층은 전망대로 열려 있다. 전망대에서는 대나무 사이로 삼천포대교의 모습이 보인다. 문학관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도 있고, 북쪽에는 박재삼 선생의 15권의 시집명과 10권의 수필집명이 새겨진 난간 조형물이 올라오는 계단에 설치되어 있다. 남파랑길 34코스에서 만나는 진널전망대에도 박재삼 선생의 시가 걸려 있고, 노산공원 내에 시비도 있다. 박재삼 시인에 대한 평가는 문학관 리플렛에 실려 있는 글을 사진으로 올린다.
참고로 문학관이 있는 노산공원(魯山公園)은 경남 사천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1956년 옛 사천군 산천포읍이 삼천포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혹시나 경남 마산 출신으로 가고파를 지은 노산 이은상 선생과 관련 있는가를 찾아 보았으나, 한글 이름만 같을 뿐이다. 이은상 선생의 호는 노산(鷺山)이고 노산공원은 노산(魯山)인 것으로 보면 노다리산을 줄인 말 같다.
사천시의 디지털사천문화대전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노산(魯山)은 한때 노다리산이라 불렀으며, 매립되기 전에는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어 노다리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노다리는 노산공원에 있는 서당인 호연재(浩然齋)를 가기 위하여 사용한 큰 돌다리의 이름이었다고 전한다. 호연재의 문장가 중에 ‘노(魯)’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있어 ‘노산’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호연재는 1770년(영조 46) 손억년(孫憶年) 등이 건립한 이후 삼천포 지역의 대표적인 서당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찾았다. 노산공원은 1950년 7월 6·25전쟁 당시 사천 지역 경찰과 일부 우익 청년단원에 의하여 자행된 보도 연맹 관련 민간인 학살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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