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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경북 안동시 풍산면 하회마을을 다녀오다

아진돌 2017. 4. 30. 09:29

2017423일 대한민국풍수지리연합회에서 실시한 경북 안동과 예천 지역 공동관산에 참여하여 대성풍수지리연구원 원우들과 함께 경북 안동시 풍산면 하회마을 다녀왔다.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는 안동하회마을은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선생의 집안인 풍산 류씨(豊山 柳氏)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1999421일에는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세가 방문하여 화제가 되었던 곳이다. 20107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제3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마을주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다양한 생활 문화가 이제는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며 하회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확정지었다(출처: 하회마을 공식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세계유산이란 세계유산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서 그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한다.

   

하회마을 홈페이지(http://www.hahoe.or.kr/)에 따르면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다. 낙동강의 상류인 화천(花川)이 마을을 빙 돌아나가는 전형적인 무도리 마을이다. 주산인 화산(花山)에서 출발한 용이 마을의 남쪽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와 마을 중심인 삼신당 자리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삼신당(三神堂)에는 입향조인 전서공 류종혜(典書公 柳從惠)가 심었다는 나무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풍산 류씨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다. 류종혜(柳從惠) 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 홍수, 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오늘과 같은 동족 기반은 중흥조 류운룡(柳雲龍)과 류성룡(柳成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류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류성룡은 지손인데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謙菴派서애파(西厓派)로 부르기도 한다(출처: 하회마을 공식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보물 제306호로 지정된 곳은 종손 고택인 양진당(養眞堂)과 보물 제414호로 지정된 류성룡의 자손들이 지은 충효당(忠孝堂)이 있다. 양진당은 류운용과 류성룡의 아버지인 입암 류중영(立巖 柳仲郢)의 호를 딴 입암 고택으로 고려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사랑채과 조선시대 양식의 안채, 불천위 사당이 있다. 충효당은 경내에 류성룡 선생과 관련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영모각(永慕閣)이 있다. 이 외에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하회북촌택(84), 하회원지정사(85), 하회빈연정사(86), 하회류씨주가옥(87), 하회겸암정사(89), 하회남촌택(90), 하회주일재(91) 등이 있다. 이러한 전통 가옥들 외에도 소규모의 토담집과 붕담집은 기본적 건축 재료인 진흙만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원초적 민가 축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구조도 자집, 자집, 자집 등 다양한 민가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의 반상(班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출처: 하회마을 공식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마을 북쪽을 흐르는 화천 건너에 있는 부용대(芙蓉臺)의 바위 절벽이 살기(殺氣)에 해당하므로 하회마을의 집들은 이 바위가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 삼신당의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서 집들의 좌향이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마을 중심부인 삼신당을 중심으로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 잡고 있고,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 길인 종가길이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데 이 마을길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한다. 또한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출처: 하회마을 공식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

 

하회마을 홈페이지(http://www.hahoe.or.kr/)에 보면 입향조인 전서공 류종혜(典書公 柳從惠)의 입향과 관련하여 '나눔'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 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출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