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첫번째 사진)

아진돌 2018. 2. 3. 12:15

 

2017102일에 오랜만에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도암면 대초리 20)에 있는 운주사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천불천탑의 운주사이다. 예전에는 그저 흥미를 갖고 찾았던 절이지만, 이번에는 불상들의 표정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며 기도도 드리고 불상을 만드신 분들의 마음도 읽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방문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으나 광주에서 화순읍 쪽으로 길을 접어드는 바람에 도착 시간이 늦었다. 화순읍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운주사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갔는데, 웬걸 운주사 근처에는 식당이 없었다. 일주문 앞에서 핫도그와 옥수수를 파시는 분의 말씀으로는 이 근처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은 운주사 입구 정비 사업으로 땅을 보상받아 큰 부자들이 되셔서 장사를 안 하신단다. 핫도그 하나와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고 사찰 경내를 둘러보았다. 운주사에서 담은 사진들은 두 번에 걸쳐 올린다. 일주문에서부터 대웅전이 있는 곳까지를 운주사(첫번째 사진)으로 올리고, 대웅전에서부터 와불이 있는 곳을 돌아 칠성바위쪽으로 내려오면서 담은 사진들을 운주사(두번째 사진)으로 올린다.    

  

화순군청의 홈페이지(http://www.hwasun.go.kr)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여 운주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화순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26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태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개천사, 서쪽에는 운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운주사의 창건과 천불천탑의 건립은 통일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하여 흔히 천불천탑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전해진 사료에는 아직까지 이 점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 雲住寺在千佛千塔之左右山背石佛塔名一千又有石室二石佛像相異座이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현존 석불석탑의 유래를 짐작할 수가 있다.

  

사찰경내의 많은 석불과 석탑은 그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성연대는 고려중기인 12세기 정도로 평가되며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적 제312호로 지정된 이곳은 1984년 이후 4차례 발굴과 석조불감해체 복원, 원형다층석탑 보수, 일주문 신축, 보제각 신축을 했으며 97년에는 와불진입로를 정비하였다. 현재 사찰경내에는 석탑 21, 석불 93구가 보존되어 있다.

    

o 9층석탑 : 운주사는 풍수지리상 배형국이라 하고 9층석탑은 돛대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며 석탑 옆면의 꽃문양이 이색적이다.(보물 제796)

  

o 원형다층석탑 : 원형다층석탑은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둥근 모습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6층이나 그 위로 몇 층이 더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연화탑, 떡탑 등의 별칭이 있다.(보물 제798)

    

o 운주사 석조불감 : 원형다층석탑 남쪽 5m 지점에 위치한 이 불감은 팔작 지붕 형태로 그 안에 석불좌상 이체(二體)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다. (보물 제 797)

  

o 와불 : 도선국사가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