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10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 번째 답사지로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00(고창읍 읍내리 241-1)에 있는 판소리박물관에 다녀왔다. 고창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척자이며 후원자였던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1812∼1884)와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고택의 안채 자리에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판소리를 가르치시던 사랑채만이 박물관 입구 왼쪽에 남아 있다.
판소리박물관 소개 리플렛에 보면,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창),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즉, 말로 공연하는 일종의 솔로 오페라이다. 판소리의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고, ‘소리’는 음악을 뜻하는 것으로 “많은 청중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좀 더 학술적으로 정의한다면, 판소리는 희로애락이 담긴 민속음악으로 1인 오페라(唱, 창)로서 반주는 북 하나뿐인 해학극으로 음악과학적이기 보다는 감정과 감각의 예술이다(홍기환(2011), 국악(판소리) 발성법).
고창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유래와 유파를 소개하는 소리마당 전시실, 동리 신재효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아니리마당 전시실, 소리광대가 백일공부를 했던 독공 현장을 재현한 발림마당 전시실, 판소리 관련 민화와 명창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명예의 전당 등으로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다. 신재효 선생의 유품과 고창지역의 명창, 판소리 자료 등 총 1,4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당시 구비전승되어 오던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성 정리하였다. 판소리 열두 마당은 판소리로 부르는 12편의 작품을 말한다.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숙영낭자타령을 말한다. 기록에 따라 무숙이타령과 숙영낭자타령 대신에 왈짜타령과 가짜신선타령이 포함되기도 한다. 현재 판소리 열두 마당 중에서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 마당만이 남아 있고 7마당은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오면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고창읍성을 둘러보고, 읍성 입구에 있는 판소리박물관은 잠시 둘러보는 코스로 여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밭문화원에서는 10월 문화탐방지로 판소리박물관만을 첫 번째 탐방지로 선정하였다. 고창읍성은 둘러보지 않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를 공부할 수 있는 판소리박물관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강화, 하순, 고창 고인돌을 공부할 수 있는 고창 고인돌박물관을 문화탐방지로 다녀왔다.
우리는 판소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누구나 판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고, 유명한 명창들을 알고 있지만, 막상 판소리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세대는 대전 인근인 공주에 박동진(1916∼2003) 명창이 계셔서 판소리를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영화 서편제를 통해 어렴풋이 동편제, 서편제라는 용어에는 익숙한 편이다. 나로서는 이번 판소리박물관 문화탐방을 계기로 판소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판소리는 우리 민속음악 가운데서 오랜 전통과 찬란한 업적을 지니고 있다. 판소리는 2003년에 유엔 산하기관인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판소리가 판노래가 아니고 소리인 이유는 노래는 짧고 서정적인 내용이고, 소리는 길고 서사적인 내용으로 긴 스토리를 엮어서 해학적으로 소리하는 것이다. 최대 8시간 동안 연행되는 동안 남성 또는 여성 소리꾼은 1명의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촌스럽기도 하고 학문적이기도 한 표현을 섞어 가사를 연행하는 즉흥 공연이다. 판소리는 엄격한 체통(體統)과 섬세한 법통(法統)이 있으면서 또한 높은 차원의 음악적 규범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5년 10년 정도의 수련을 쌓아가지고는 결코 일가(一家)를 이룩할 수가 없으리만치 수업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유기룡(1972), 판소리의 유파적 고찰).
판소리는 크게 분류하면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高制), 강산제(江山制)로 구분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전라북도 함열을 기점으로 하여 전라남도 해남에 이르는 옛날 국도를 기준으로 동쪽 고장에서 불리던 동편제와 서쪽 지방에서 불리던 서편제로 구분한다. 중고제는 지역 한계가 없으나, 일부에서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을 중고제의 중심지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동편제는 소리 마디마디가 분명하게 떨어져서 마치 도끼로 큰나무를 패듯이 쩡쩡 울린다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격이라 한다. 동편제 소리는 소리의 끝이 내려까불아지지 않고 매양 드높게 들어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소리에 잔재주가 들지 않으며 긴 빨래를 널 듯이 쭉쭉 펴서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다. 호령하거나 호걸스럽게 의사를 표시할 때에는 어세(語勢)가 강렬하고 활달한 특징이 있다. 일명 호령제라고도 한다. 주요 명창으로는 권삼득(전북 익산), 송흥록(전북 운봉), 방만춘(충남 해미), 주덕기(전남 창평), 송우룡(전망 구례), 송만갑(전남 구례), 이동백(충남 비인) 등이 있다. 명창 송만갑은 동편제 가통(歌統)을 이탈하고 독특한 자기류(自己流)를 창작하여 한동안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서편제는 동편제와 반대로 애원성 설음제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소리가 부드러우면서 애절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판소리에서 동편제는 괄괄한 반면 서편제는 애타고 구성지다 할 수 있다. 동편제 소리가 끝을 들어 올리는가 하면 서편제에서는 소리 끝을 내려 눕히게 한다. 동편제 소리가 동강 뚝뚝 떨어지는 것에 반해서 서편제 소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소리를 길게 이어간다. 서편제 명창으로는 김성옥(충남 강경), 신만엽(전북 여산), 주상환(전남 창평), 이날치(전남 광주), 정창업(전남 함평), 김창환(전남 나주) 등이 있다.
중고제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특징을 합한 것은 아니고 두 개의 특징을 절충한 것도 아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 위치에 놓여 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충분한 해서은 아니다. 반음(半音)을 많이 쓰는 특징이 있다. 중고제는 상성, 하성, 중앙성 중에서 중앙성을 바탕으로 한다. 중고제는 음계적 차이가 선명하고 격차가 심한 특징이 있고, 동편제와 같이 소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 강산제는 철종 때부터 서편제 계열의 명창인 박유전이 처음 개발한 것이다. 강산제 소리는 애통 처절한 성음을 피하고 되도록 순평한 성음으로 표현한다.(참고문헌: 유기룡(1972), 판소리의 유파적 고찰).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쉰 소리 즉 탁음(濁音)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성악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복식호흡의 일종인 단전호흡을 기본으로 하여, 단전에서 밀어 올라오는 소리인 통성(通聲)을 사용한다. 판소리 발성은 단전호흡법을 익히고, 통성을 발성하기 위한 훈련과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발음법을 익힌 후 득음을 얻기 위한 독공(Intensive Training) 과정을 거친다. 인적이 드문 산속의 계곡, 동굴, 폭포 옆에서 득음 과정을 거친다. 판소리 명창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연습을 필요로 한다. 옛날의 판소리 광대는 사방이 탁 트인 마당이나 마루 혹은 가설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마이크나 스피커와 같은 음향시설이 없어서 소리를 멀리까지 힘차게 내질러야 했기 때문에 우렁찬 목소리를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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