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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리 유적지와 석장리 박물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5. 12. 14. 16:54

2025년 11월 29일(토)에 충남 공주시 금벽로 990(석장리동 118)에 있는 공주시에서 설립한 석장리 박물관에 다녀왔다. 그동안 수없이 32번 국도를 지나 다니면서도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 척추관협착으로 인한 간헐적 파행으로 모빌리티 능력이 저하되어 한달에 두 번 가는 남파랑길도 못 가고 있어서 시간을 내어 가기로 하였다. 2025년 11월 22일에는 공주시 종합버스터미널을 알지 못해 공주까지 갔다가 되돌아왔고, 11월 29일에는 제대로 시간을 맞추어 공주시 신관동 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9시2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혼자 타고 가게 되었다.
 
석장리 박물관은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입증해 준 기념비적인 유적지인 석장리 유적지에 있는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첫 구석기 발굴지에 세워진 국내 최초 구석기 전문 박물관으로서, 1964년~2023년까지 14차례에 걸친 석장리 유적 학술 발굴 및 연구성과를 토대로 우리나라 선사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전시한 박물관이다.
 
석장리 유적지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금강가에 있는 유적지로, 1964년 11월에 처음 석장리 구석기 유적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된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선사유적지가 없다고 주장했던 일본 식민사관에 찌들어 있는 역사학계에서 구석기학을 태동시키고,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중요한 유적이다. 예전에는 석장리 구석기 유적지로 불리다가, 지금은 청동기 시대 유물 등도 발견되어 석장리 유적지로 불리고 있고, 국가유산청에서 사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석장리박물관 홈페이지( https://www.gongju.go.kr/sjnmuseum/index.do )에 따르면, 석장리 박물관은 1990년 32번 국도가 건설되면서 석장리 유적지 보존 문제가 대두되어, 공주시에서 1991년에 기본설계를 마친 후 1999년 12월에야 전시관 건축이 완료되었고, 2006년 9월 26일에 개관하였다. 석장리 유적지를 최초로 발굴하시고, 찍개, 긁개, 주먹도끼, 새기개, 슴베찌르개, 주먹도끼, 몸돌 등 순수 우리말 용어로 구석기 관련 학술용어들을 정립하신 연세대학교 교수셨던 파른 손보기 교수를 기념하기 위해 2009년 5월 5일에 개관한 손보기 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을 둘러보고 상설전시관을 둘러보게 되었다. 상설전시관에서는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이신 안*순 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실물에서는 읽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신 안 문화관광해설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박물관 주차장에서 내려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조형물들을 만난다. 입구에는 바위 위에 앉아 석기를 바라보는 구석기 사람의 조형물이 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모습과 똑같다. 첫 번째 만나는 파른 손보기 기념관에서는 <석기이력서-가죽을 다루는 도구들>이라는 주제로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슐리안 형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전곡 유적지에 있는 전곡선사박물관과의 협력전으로 2025년 5월 3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전시된다고 한다. 인류가 빙하기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모피옷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던 밀개를 중심 주제로 하여 다양한 전시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별전시관 옆에는 상설전시관이 있다. 입구에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석장리 유적의 발견과 발굴 과정부터 14차 발굴 때까지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첫 발견부터 발굴 과정의 각종 사진들과 출토물들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최초 발굴 신청서와 발굴 허가서 문서들부터 파른 손보기 선생의 기록물과 각종 유품 등이 잘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 첫 발굴 당시의 하루 하루 일과를 기록한 일일 기록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역사의 기록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발굴에 참여했던 석장리 주민들의 이름과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신 손보기 선생 등 발굴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차 발굴단장이었던 손보기 교수의 이름은 가나다 순으로 전시되어 있는 발굴 참여자 명단에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도 멋지다.
 
구석기 시대 뗀석기와 우리가 길에서 보는 돌과의 차이점은 몸돌과 격지에서 충격을 가한 지점에서 힘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동심원 흔적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토품 중에는 백두산에서만 나오는 흑요석 석기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물물교환을 통해 흑요석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상설전시실 끝 부분에는 파른 손보기(1922~2010) 기념실이 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일을 평생의 학문의 목표로 삼으셨던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1964년 유학을 마치고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첫 해, 선생은 석장리 유적과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증명하여, 우리나라에는 선사문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던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었던 분이다.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역사가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가는 데 크게 공헌하였고, 한국 구석기 고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된 유적이다. 1964년 11월 이 유적의 발굴을 통해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이 처음으로 입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미국의 고고학자 앨버트 모어(Albert D. Mohr)와 릴리 샘플(Lillie L. Sample) 부부는 1963년 홍수로 무너져 내린 금강 유역에서 뗀석기를 채집하였고, 1964년 5월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와 함께 석기가 채집된 현장을 답사하여 새로운 석기를 찾게 되었다. 이에 연세대학교 발굴팀이 구성되어, 1964년 11월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첫 번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뒤 1974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1990년과 1992년 11~12차 발굴 조사가, 2010년에 13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최근에는 2023년에 석장리 세계구석기공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제14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석장리 유적은 제1지구와 제2지구로 나누어진다. 제1지구에서는 후기 집터층에서 2만 8000년 전과 그 아래층에서 3만 600년 전의 연대가 밝혀졌다. 최하층의 외날찍개 문화층은 암반층인 석비레층 위에 바로 쌓인 층으로, 제2빙하기인 55∼45만년 사이에 이루어진 층이다. 2문화층은 제3빙하기인 35∼32만년 사이에, 3·4문화층은 21만년 전의 제3빙하기 뒤쪽에, 5문화층은 18만년 전의 빙하기에, 6문화층은 제3간빙기인 12만년쯤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중기 구석기 성격을 지닌 자갈돌 찍개문화층은 따뜻한 기후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그 아래쪽의 찰흙층에서는 산화철이 굳어서 이루어진 뿌리테가 나오고 있다. 이 층의 석기들은 아슐리앙 전통의 주먹도끼, 돌려떼기수법의 몸돌, 격지들이 있어 연대가 7만∼6만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8·9문화층은 제4빙하기에 이루어진 6만∼5만년 전으로, 10·11문화층은 3만∼2만년 전으로 각각 추정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479 )
 
국가유산청의 석장리 유적 안내문을 전제하면 아래와 같다. 구석기시대에는 두발 걷기, 손을 사용한 도구의 제작, 두뇌의 크기 증가 등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인간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대의 연구는 현재 우리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이므로 유럽에서는 18세기부터 이미 구석기 유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1964년에 들어서야 이곳 공주 석장리에서 처음으로 구석기 발굴조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을 거쳐 1990년까지 약 30년간 이어진 조사 결과 구석기인들이 제작, 사용한 뗀석기와 주거지의 흔적 등 생활문화자료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며 1990년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의 중요성에 기초하여 2006년 석장리박물관이 건립 되었으며, 이후 충청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10년 13차 발굴이 진행되었다.(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23년에 14차 발굴이 진행되었다.)
 
찍개, 긁개, 주먹도끼, 새기개 등의 석기류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후기 구석기층의 집자리에서는 숯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약 2만 5천년에서 3만 년전의 집터임이 확인되어, 당시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전후 시기에도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꽃가루를 조사한 결과 이 일대에 소나무·전나무·목련·백합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출처: 국가유산청포털 – 석장리 유적 https://www.heritage.go.kr )
 

▲ 석장리 박물관 상설전시관
▲ 석장리 유적 및 박물관 입구

 

▲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파른 손보기 선생 기념관
▲ 특별기획전
▲ 최초로 금강변에서 구석기 뗀석기를 발견한 미국의 고고학자 앨버트 모어(Albert D. Mohr)와 릴리 샘플(Lillie L. Sample) 부부
▲ 손보기 교수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기록된 명단에서 찾을 수 있다.
▲ 발굴일지
▲발굴 허가 신청 -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던 관료들은 우리나라에는 구석기 유적이 없다고 허가 불허
▲ 발굴허가서
▲ 발굴과정에서 닳아버린 도구들
▲백두산 언저리에서 나오는 흑요석이 여기서도 발견되었다.
▲한데 유적 - 야외 유적의 순우리말(손보기 교수의 한글 사랑을 엿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살았던 동물들
▲ 파른 손보기 교수 기념실
▲일제강점기 때 빨간불이 켜져 있던 시골마을 주재소를 지나는데 일본 순사가 머리를 때리며 "야만인도 피가 나는지 보기 위해 때렸다"는 말을 듣고, 호를 빨강색의 배색인 파른으로 지으셨다고 한다.
▲ 상설전시관 옆의 야외전시실
▲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시설
▲ 첫발굴지
▲박물관 주차장에 있는 매머드 사냥 조형물
▲ 정문 옆에 있는 카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