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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의령군 충익사와 의병박물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1. 22. 08:24

2026년 1월 11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번째 답사지로 경남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의령읍 중동리 468)에 있는 충익사와 의병박물관에 다녀왔다. 충익사(忠翼祠)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 장군으로 활동한 홍의장군 충익공 곽재우 장군과 휘하의 17인의 장령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의령읍 남산 밑의 의령천 강가에 조성되었으며, 1974년에 준공되었다.
 
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진 망우당 충익공(忠翼公)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 출신으로 망우당은 호이고 충익공은 조정에서 무인에게 내려준 시호이다. 1585년(선조 18년)에 34세 나이로 별시의 정시 2등으로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하여 무효가 된 후, 과거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기강(岐江, 거름강) 위의 돈지에 강사(江舍)를 짓고 은거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켜 의령, 창녕, 영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며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한 전략, 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 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일시 역임하였다. 장군은 사후에 병조판서 겸 지의금사에 추증되었다.
 
1592년 5월 솥바위나루(鼎巖津, 정암진)를 건너려는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의령·삼가·합천 등의 고을을 지켜냈고, 일본군이 호남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또한 거름강(岐江)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가로막았으며, 현풍·창녕·영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물리쳤다. 1592년 10월에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장군의 1차 진주성 싸움에 자신이 거느린 의병을 보내 응원하기도 했다. 의병 활동의 공으로 7월에 유곡찰방에 올랐고, 10월에는 절충장군 겸 조방장이 되었다.
 
의령천 위의 의병교를 지나면 의병탑이 있다. 탑 중앙에는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을 상징하는 18개의 흰색 둥근 고리가 층층이 있고 양쪽에 있는 두 기둥은 횃불을 상징한다고 한다. 탑 중앙에 있는 '의병탑'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의병탑 앞에서 의병분들을 위한 묵념을 올리고 답사를 시작하였다.
 
우측에 있는 홍살문을 지나 사당의 외삼문으로 설치된 충의문(忠義門)을 지나면 왼쪽에 충의각이 있다. 충의각은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이름과 본관, 호, 증직을 기록한 명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상여처럼 보인다. 화려한 다포식 팔작지붕을 땅에 내려놓은 형태의 목조건물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건물 구조다. 어느 한 곳에도 쇠못을 치지 않은 우리나라 전통 목조 건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충의각 앞에는 구골목서가 있다. 올해는 무슨 일인지 혹한의 날씨인 요즘에 꽃이 만발해 있었다.
 
충의각 앞에는 충익사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인 모과나무 고목이 있고, 그 옆에는 우리나라 지도를 본 떠 만든 인공 연못이 있는데 붉은 잉어를 비롯한 관상어가 풍치를 더해준다고 소개하고 있다. 원래 이 모과나무는 가례면 수성마을의 당산목이었으나, 1978년에 곽재우 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을 진행할 때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의령군의 소개 자료에는 수령이 약 500년으로 소개되고 있고 아직도 수세가 건강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조사된 모과나무로는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높이가 12미터나 되고 줄기 둘레가 4 미터나 된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충의문 앞에 쌓아놓고 주민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다. 우리에게도 보여주듯이 주먹만한 모과 한 개가 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늙은 거목을 성공적으로 옮겨심은 원예전문가께 경의를 표한다.
 
배산임수로 배치된 충익사 앞에는 내삼문 역할을 하는 홍의문(紅衣門)이 충의문과 직각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홍의문을 지나 충익사 사당 앞에 모여 분향을 하고 다같이 묵념으로 예를 올렸다. 충익사는 1978년 12월 22일에 준공되었다코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초에 급하게 국가유산들이 복원되거나 건축될 때 그랫듯이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다포식 팔작지붕 형식으로 양쪽 처마가 위로 살짝 올라간 형태로 콘크리트 건물로는 잘 지은 사당이다. 이러한 콘크리트 건물도 우리 근대사의 또 하나의 보존해야할 유산이기도 하다. 의령천변의 제약으로 외삼문과 내삼문 및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지 못한 점도 특이한 점이다. 외삼문과 내삼문 앞에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고 왼쪽 문으로 나오도록 사당 출입 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마음에 쏙들었다. 나름대로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는 정성이 보였고, 함께 간 많은 탐방객들이 누구하나 실수하지 않게 가이드하는 역할을 잘 해주어 흐믓했다.
 
충익사를 바라보고 우측에 있는 기념관에는 곽재우 장군의 기마도와 의병창의도, 기강전투도, 정암진전적도, 하왕산성대치도 등 5점의 대형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다. 망우정 현판이 걸린 정자의 모형이 있다. 망우정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과거 합격이 무효 처리된 후 세월을 보냈던 강사(江舍)로 창녕군 도천리 우강리 낙동가에 있는 정자이다.
 
충익사 탐방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의병전시관을 관람하였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볼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의병박물관은 2012년 6월 1일 개관한 군립박물관이다. 기존의 의령군민문화회관에 있던 의령박물관을 충익사 기념관과 합관하여 의병박물관으로 이전 개관하였다고 한다. 고고역사실, 의병유물전시실, 특별전시실, 영상실, 수장고 등이 있다. 고고유물실에는 선사시대 유물부터 가야 유물을 비롯하여 근대까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가야시대 유물들은 이곳 의병박물관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이곳 의령지역은 가야시대 초기에는 함안에 있던 아라가야에 속했었고, 그후 김해의 금관가야가 융성할 때는 금관가야의 영역이었으며, 후기 가야연맹 시절에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의 영역이었다. 가야 시대 유물로 아라가야,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등 여러 가야국의 특징적인 유물들이 같이 전시되고 있었다. 경남 고성군의 고성박물관에서 보았던 소가야 토기들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철기문화를 꽃 피웠던 가야의 철제 마구(馬具, 말갖춤)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의령지역에서 출토된 국보인 연가칠년명금동불입상과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수레바퀴 모양 토기와 보리사지금동여래입상이 별도 코너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12현금의 가야금을 만든 이곳 의령의 가야 출신 우륵 악사와 의령 출신으로 부산에 백산상회를 창립하여 독립군의 군자금을 대셨던 백산 안희제 선생의 유물도 볼 수 있다. 의병유물전시실에는 곽재우 장군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솥바위가 있는 정암진에서의 전투 장면을 시현한 디오라마도 볼 수 있다.
 
의병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2005년에 준공된 세 갈래 구름다리인 의령 구름다리를 건너서 충익사 지역 탐방을 마쳤다. 의령 구름다리는 의령천을 정비하면서 만들어진 다리로 총 길이 258미터, 주탑의 높이가 48미터나 되는 멋진 출렁다리이다. 주탑은 곽재우 장군과 17인의 장령을 상징한 의병탑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다리 구조물들은 홍의장군의 이미지에 따라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야간에는 멋진 조명이 비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