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1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두번째 답사지로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남강로 686(의령읍 정암리 산1-1)에 있는 정암루와 솥바위를 둘러보고 정암철교를 걸어보았다. 문화관광해설사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솥바위는 한자로 정암(鼎巖)이라고 부르며 부자바위로 알려져 있다. 의령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자료를 인용하면, 의령의 관문에는 지리산 정기가 담긴 남강이 역사의 숨결인 의병의 기운을 품은 채 흐르고 있다. 이 남강의 물속에는 세 발을 달고 있는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옛 솥을 닮아 솥바위(鼎 솥정, 巖 바위암)라 하고 바위 근처 마을을 정암, 남강변의 나루터는 정암진이라 불린다.
정암진은 1592년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의병을 이끌어 대승을 거두었던 곳이다. 식량 확보를 위해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일본군을 소탕하여 임진왜란을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 솥바위에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솥바위를 지나는 도사가 솥바위를 중심으로 반경 20리 안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고 예언하였다. 이후 솥바위 반경 20리 안에 삼성, 엘지, 효성그룹의 창업주가 출생하여, 솥바위의 전설은 현실이 되었으며, 현재도 솥바위의 기운을 받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고 있다.
의령 솥바위는 대한민국 경제부흥을 이끈 거부 탄생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 솥바위를 ‘대한민국 부자1번지’로 명명하고, 바위의 기운이 가장 좋은 자리에 지름 80cm, 무게 40kg의 원형동판을 설치했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는 밟으면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포앵 제로(Point Zero)’가 있다. 솥바위의 동판도 포앵 제로처럼 원형동판에 서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솥바위의 기운이 전해진 동판을 밟으면 행운과 건강, 부의 기운을 충전할 수 있다.(출처: 의령군청 문화관광 – 의령 솥바위의 전설)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를 보면, 솥바위의 기운은 창업과 입시를 앞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솥바위를 향해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솥바위를 찾아와 소원을 빌고 있다고 한다. 솥바위의 형상은 예사롭지 않은 형상이다. 물속을 내려가 보면 우리 민족의 상징인 세 발 달린 솥 모양이라 하니 더욱 신비롭다. 전설이 어떻게 현실로 될 수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앞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주역(周易)에 보면, 솥바위를 상징하는 괘(卦)인 화풍정(火風鼎) 괘가 있다. 초효가 변하면 크게 소유하여 크게 형통한다는 화천대유(火天大有) 괘가 되는 괘이다. 최근에 대장동 사건과 관련되는 회사의 명칭으로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 괘의 이름이다. 화풍정 괘는 솥(鼎)으로 음식을 익히니 크게 길하고 형통한다는 괘로, 나무로 불을 지펴 음식을 삶아 익힌다는 괘이다. 하괘인 손괘(巽卦)는 바람의 뜻이지만 오행으로는 나무 목(木)이고, 상괘는 이괘(離卦)로 불을 뜻해서 밑에서 나무로 불을 지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역 괘를 설명하신 공자께서는 이 괘를 성인이 음식을 삶아 익혀 하느님께 제사 드리고 많은 음식을 삶아 성현을 기른다고 해석하셨다.
아마도 경남 의령군과 인접 군에서 자란 젊은 선비들은 이 괘사를 공부했을 것이고, 이 주역 괘사를 익히며 남에게 음식을 베풀 수 있는 부자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의령 지방은 남강이 흐르는 윤택한 지역으로 부의 축적이 가능하여 시드 머니(Seed Money)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고, 창업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 본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전설이 현실화된 것 같다.
나는 솥바위 주변 의령에서 탄생하신 세분의 큰 부자로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 관정 이종환(1924~2023) 회장,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을 꼽고 싶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현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백범(白凡) 김구 선생,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과 함께 삼백(三白)이라 불리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으신 분이다.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창업하여 사업하면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재산을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제공했던 분이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가면 부산 타워 입구에 안 선생의 흉상이 있고, 옛 백산상회 자리에 백산 기념관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귀국한 후에 경주 교동 최 부자인 최준을 불러 그간의 독립자금 지원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독립운동자금 장부를 보여주었는데, 그 장부에 적힌 금액이 최준의 장부 금액과 정확히 일치하였다고 한다. 그때까지 최준은 그 돈의 상당 부분을 안희제가 활동 자금과 여비 등으로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했고, 자금의 절반이라도 임시정부에 들어갔으면 다행이라 판단했지만, 사실 안희제는 최준의 자금을 중국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최준은 김구의 집무실 바깥 창문을 열고 나가 2년 전 순국한 안희제 묘소 방향을 향해 목 놓아 울며 김구가 위로할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관정 이종환 회장은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서 출생하신 분이다. 1959년에 경남 의령군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다 서울 영등포구 영일동 동양맥주 공장 근처에 삼영화학공업사를 창업하신 분이다. 주로 콘덴서 필름 등 B2B 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를 운영하며, 부자가 되신 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여 국내 최대 교육재단인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만드셨고, 서울대학교에 600억원을 기부하여 관정도서관을 지어 주신 분이다. 삼영화학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최루탄으로 돈을 벌었다고 비난 받은 적이 있는 삼양화학과는 전혀 다른 회사이다.
삼성 그룹 창업자이신 호암 이병철 회장님이야말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신 분이다. 이 외에도 의령군 남쪽의 진주시 출신이신 LG그룹 창업자 구인회(1907~1969) 회장과 함안군 출신이신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1906~1984) 회장이 있다. 솥바위 주변에서 태어나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신 이분들은 한결같이 주역 괘사대로 솥에서 음식을 익혀 많은 사람을 먹이신 분들이다.
솥바위에서 기를 받고 정암루로 오르며, 홍의장군이 왜적과 싸우던 정암진 전투 현장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배를 묶던 정암나루터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장사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정암루를 구경하고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정암철교를 걸어 보았다.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포털의 소개 자료를 인용하면, 정암철교는 의령군과 함안군 사이를 흐르는 남강을 가로질러 설치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 다리로, 길이 259.6m, 폭 6.0m이다. 1935년에 처음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958년에 남아있던 기둥을 그대로 살려 기존의 철골 트러스 구조로 복원하였고, 완전히 파괴된 부분은 새로운 기둥을 세워 철근 콘크리트 T형 보 구조로 다시 세웠다. 정암철교는 1973년에 남해 고속 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부산·경남에서 전라도로 가는 주요 길목으로, 근현대기에 경남 서부 지역 교통 체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8년 말, 근처에 정암교가 건설된 후에는 1t 이하인 차량만 통행이 허용되었고, 2007년부터 차량통행이 완전 금지되고 보행자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출처: 국가유산포털 – 정암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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