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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유적과 백제왕궁박물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3. 12. 08:46

2026년 3월 8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두 번째 답사지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왕궁면 왕궁리 562)에 있는 익산 왕궁리 유적과 백제왕궁박물관에 다녀왔다. 익산 IC에서 720번 도로와 1번 국도를 따라 익산시로 가는 길에서 왼편으로 탑 하나가 덩그러니 보이던 곳이다. 한번 들러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한밭문화원 덕택에 가보게 되었다. 지금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백제왕궁박물관까지 건립되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이야기인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재위 600~641) 재위 기간에 조성된 왕궁터이다. 그동안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던 유적이지만, 왕궁리라는 지명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왕궁리 유적은 익산 백제 왕도의 핵심 유적으로서, 1989년부터 30년 동안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 대 왕궁으로 건립되어 일정 기간 경영되다 후대에 왕궁 내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2015년에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공주 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지역에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지역에 2곳(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등 3개 지역 8곳이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https://unesco.or.kr/ )에서 소개한 글을 보면,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도시(충남 공주시, 충남 부여군, 전북 익산시)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과 연관된 유적지로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고대의 무덤이 여럿 모여 있는 지역), 부여 사비성과 관련해서는 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부여 나성, 그리고 끝으로 사비 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유적지로는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가 있다.
 
이들 유적지의 유산들은 475~660년 사이에 백제 왕국이 이룩한 빛나는 문화예술과 이웃 국가들과 나눈 교류의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또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해 백제화한 증거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이룩한 백제의 세련된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보여준다.(출처: 한국유네스코 한국위원회 –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는 북부여에서 한강변으로 내려와 기원전 18년에 건국하여 660년 부여에서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멸망한 고대 왕국이다. 백제의 역사를 도읍지별로 3기로 나누는데, 백제 역사의 최전성기였으나 유적과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한강변의 위례성을 근거지로 하였던 한성시대와 충남 공주시의 웅진시대, 충남 부여군의 사비시대로 구분된다. 한성시대(BC 18~475)는 1대 온조왕부터 21대 개로왕까지의 시기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토대로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1대 개로왕이 고구려 군에게 처형된 후 공주시 금강변으로 천도한 웅진시대(475~538)는 22대 문주왕부터 25대 무령왕과 26대 성왕(즉위 523~554)이 사비로 천도할 때까지이며, 충남 부여군 백마강변으로 천도한 사비시대(538~660)는 26대 성왕부터 31대 의자왕까지이다. 사비시대에 무왕은 이곳 왕궁리에 왕궁을 건설하고 일정 기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30년 동안 발굴조사 결과로 외곽 담장과 내부 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왕궁의 생활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다. 왕궁의 남쪽 절반은 의례와 의식, 정무, 생활을 위한 건물을 배치하였고, 동·서 방향의 4개 석축으로 공간을 나누어 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쪽 절반은 왕궁 내 휴식을 위한 공간인 정원과 후원이 있었고, 당시 최고위 귀중품인 금과 유리를 생산하던 공방이 있었다. 발굴과정에서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어 목간으로 화장실 뒤처리를 했던 백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왕궁의 용도가 폐기된 후 왕궁의 중요 건물을 파괴하고 그 위에 사찰을 건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떤 연유로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되었는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무왕이 익산의 쌍릉에 모셔짐으로써 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활용하거나, 백제 멸망 후에 무왕 세력의 결집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찰의 유적으로는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에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출처: 국가유산포털 – 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 유적 주차장에는 백제왕궁박물관이 있다. 백제왕궁박물관은 백제 왕궁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 유물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8년 왕궁리유적전시관을 개관하였다가, 2015년 왕궁리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유산 보존 관리사업의 하나로 2020년 8월부터 노후화된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리모델링한 후 2021년 10월 15일에 백제왕궁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백제왕궁실이라는 이름의 상설전시실에는 출토 유물과 왕궁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왕궁의 생활문화로 변기 모양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