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8일(일) 대전 한밭문화원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세 번째 답사지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에 있는 익산 미륵사지(益山 彌勒寺址)에 다녀왔다. 미륵사는 백제 제30대 무왕((武王, 재위 600~641)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서쪽 석탑과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서쪽 당간지주가 석물로 남아 있고 최근에 복원된 동쪽 석탑이 있다. 서쪽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금동향로가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에는 미륵사지를 둘러보느라 시간이 없어 익산박물관은 제대로 관람을 못했다. 다음 기회에 한번 더 와봐야겠다.
서쪽 석탑(石塔)과 당간지주(幢竿支柱)만 덜렁 남아 있는 미륵사는 601년(백제 무왕 2년)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억불정책을 시행하던 조선시대에 들어 17세기경에 폐사된 뒤 절터는 경작지와 민가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용화산 중턱에 있는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금당,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사지는 1974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원광대학교가 동탑지(東塔址)를 조사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발굴조사가 시작된 것은 중서부고도문화권개발사업(中西部古都文化圈開發事業)의 하나로 발굴이 진행된 1980년부터 1995년까지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이전까지 1910년에 조사한 일본사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던 ‘品’자 모양의 가람 배치설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과 동시에 미륵사지의 전체적인 규모도 밝혀지고 2만여 점의 유물도 수습되었다고 한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3탑3금당의 독특한 가람배치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 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한다. 이것이 복도(회랑)로 구분되어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이곳이 연못이 있던 습지였으므로 바닥 마루의 습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 시설이 발견되어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토기·금속·목재 등 다양하며 글자를 새긴 기와도 많이 발견되었다. 현재 국립익산박물관에는 미륵사의 복원된 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로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도 왕궁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공주 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지역에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지역에 2곳(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등 3개 지역 8곳이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목탑 양식에서 석탑 양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석탑으로 외형이나 구조 등이 목탑과 유사하다. 국가유산포털 자료에 따르면,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다. 창건 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으며,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이 보강되고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다.
남아있던 6층까지의 높이는 약 14.2m이고 상·하 이층으로 구성된 기단의 전체 폭은 약 12.5m이다. 1층은 각 면이 3칸으로 구성되고 가운데 칸에는 문을 내달아 계단을 통해 사방으로 통하게 하였다. 기둥석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기법과 양 끝 모서리를 약간 높인 귀솟음기법이 반영되어 있다. 기둥석 하부에는 목조건물에서처럼 별도의 초석이 있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상ㆍ하 인방석(引枋石)과 기둥 상부에 평방석(平枋石), 포벽석(包壁石) 등이 구성되었다. 옥개부(屋蓋部)는 목조건물의 지붕처럼 모서리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가고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한편 석탑의 1층 내부에는 ‘十’자형 공간이 조성되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출입이 가능하며, 탑의 중심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 돌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기둥(심주)이 4층까지 연속된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며, 2009년 1층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의 기록을 통해 639년이라는 석탑의 건립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이듬해 해체 수리가 결정되었고, 2001년 해체조사에 착수하여 2017년 조립 공정이 완료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보여준다. 또한, 고대 건축의 실제 사례로써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불탑건축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유산이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최근에 복원된 동탑은 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석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백제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양식이 옮겨가는 시기의 탑 양식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탑이다.
미륵사지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미륵사지 석탑(서쪽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의 기록이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던 중 2009년 1월 첫 번째 심주석(心柱石) 안에 봉안된 사리병과 금제사리봉영기, 구슬 등 사리장엄구 9900여 점이 나왔다. 금제 사리봉영기의 금판 앞뒷면에 194자로 된 사리 봉안 기록판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로, 좌평(백제의 최고 관직)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이는 백제 서동왕자(무왕)가 향가 ‘서동요’를 신라에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했으며, 그 뒤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나무위키 저자는 “선화공주의 요청으로 짓기 시작한 사찰이 백제 내의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서 사택비의 공적으로 둔갑했다거나, 삼국통일로 신라의 정통성이 확립된 시기의 인물인 일연이 사택비의 공적을 선화공주의 공적으로 흡수했을 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백제 시대에는 조선시대와 달리 정식 왕후가 여러 명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서쪽 석탑 근처에 있는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은 1997년에 전라북도가 주체가 되어 개관하였다가,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2015년 12월에 도립 전시관이 국립전시관으로 바뀌었고, 2019년 초에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익산 관내를 비롯한 전라북도 서북부의 유물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바로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2020년 1월 10일에 국립익산박물관이 새로운 건물에서 개관하였다.
지하 시설로 멋지게 지어진 박물관이다. 둘러볼 시간이 없어 아쉬웠지만, 다시 한번 더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면에서 위로가 된다. 박물관 건물은 미륵사지의 경관을 고려하여 중심 지역보다 낮은 위치에 세웠으며 지형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인 모형은 미륵사지 석탑의 이미지를 살린 것으로 지붕 처마선의 날렵함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즐거운 여행 > 문화유산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등 석산전망대에 다녀오다. (1) | 2026.03.14 |
|---|---|
| 황등 아가페정원에 다녀오다. (0) | 2026.03.14 |
| 익산 왕궁리 유적과 백제왕궁박물관에 다녀오다. (0) | 2026.03.12 |
| 모악산 금산사에 다녀오다. (1) | 2026.03.09 |
| 와룡산 백천사에 다녀오다. (1) | 2026.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