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행복을 주는 이야기/우리들의 이야기

밤고구마 vs. 호박고구마

아진돌 2010. 2. 4. 22:34


밤고구마는 서럽다. 밤고구마는 언젠가부터 주황색 속살을 가진 호박고구마에게 왕좌 자리를 내줬다. 사람들은 “밤고구마는 푸석푸석하고 단맛이 적다”고 말한다. 하지만 밤고구마는 “우리가 맛없다는 사람은 밤고구마를 먹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단순히 단맛으로만 비교하면 밤고구마는 분명 호박고구마보다 식감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별하면 안 됩니다. 밤고구마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호박고구마보다 맛있을 수 있어요.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의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호박고구마가 밤고구마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분 때문이다. 호박고구마는 밤고구마에 비해 당분 함량이 높다. 밤고구마는 당분의 빈자리를 전분으로 채우고 있다. 밤고구마의 전분 비율은 18~20%지만 호박고구마는 5~8%에 불과하다. 두 품종의 당분과 전분 함량은 10%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 10%의 차이는 군고구마나 찐고구마를 만들었을 때 맛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한다. 특히 찐고구마는 고구마에 포함된 수분이 잘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당분이 많은 호박고구마의 단맛이 더 강하다. 사실 호박고구마는 익히지 않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달고 부드럽다.

군고구마로 만들 때도 단맛은 호박고구마가 더 강하다. 호박고구마는 밤고구마보다 수분이 많은데 고구마를 구울 때 수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당분의 함량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단맛을 포함한 전체적인 식감을 보면 꼭 호박고구마가 맛있다고 할 수만은 없다.

구워지며 수분이 날아간 호박고구마는 조직이 실처럼 가늘어지고 약간 뻣뻣해진다. 씹는 느낌이 부드럽지 않고 베어 물어도 잘 끊어지지 않는다.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구운 호박고구마의 조직은 질겨진다. 반면 밤고구마는 수분이 적고 전분이 많기 때문에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게다가 수분이 날아가며 푸석푸석함도 줄어든다. 속이 꽉 찬 군고구마가 되는 것이다.

밤고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은 튀김이나 전이다. 전분이 많기 때문에 튀김옷을 입히지 않아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고 고소한 맛은 강해진다. 하지만 고구마튀김이나 고구마전은 요리한 뒤 바로 먹어야 한다. 고구마에는 ‘얄라핀’이란 수지(진액)가 있는데 전분과 얄라핀은 열을 받았다 식으면 딱딱하게 굳어진다. 영화관 앞에서 파는 고구마튀김이 돌처럼 딱딱한 이유는 오랫동안 식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아무리 우리(밤고구마)가 이렇게 말해도 호박고구마 특유의 단맛은 따라갈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더 화가 나는 이유는 호박고구마는 예전에 수분을 많이 함유한 물고구마였어요. 우리가 등장했을 때는 물고구마보다 밤고구마가 맛있다더니 이제는 물고구마를 개량한 호박고구마가 인기를 얻고 있어요. 언젠가는 종자 개량이나 조리법을 개발해 다시 고구마의 왕좌를 탈환하고 말겁니다.”

도움말=전남대 식품영양학과 신말식 교수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