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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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땅굴을 들어가 보다

아진돌 2013. 7. 14. 16:56

 

2013년 7월 4일 제2땅굴을 들어가 봤다. 1973년 11월 20일 야간 경계근무를 하던 초병 두명이 지하로부터 폭음을 듣게 된다. 최초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으나 그들은 강원도 탄광촌 출신으로 지하 폭발음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청음활동을 강화하던 중 땅굴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당시 농업진흥공사가 지하수 개발을 위해 도입했던 시추장비를 투입하여 총 45개의 시추공을 뚫어 이 중 7개가 적의 남침용 땅굴에 정확히 관통되었고, 1975년 3월 1일부터 3월 24일까지 25일간에 걸쳐 현대건설을 통한 시추작업에 의해 땅굴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00미터,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쪽으로 1,100미터, 총 3.5km를 파내려온 땅굴이다. 최초에 우리 측에서 접근 땅굴을 통해 남침 땅굴로 투입된 군인 대여섯명이 북한군들이 설치한 무기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가 있었다. 당시 우리 군은 땅굴을 발견하고 중립군 감시단에 알렸고 중립국 감시단의 입회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중립국 감시단은 중립국 여기자 서너명과 함께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광산촌에서는 여성이 갱도에 들어가면 사고가 난다는 속설이 있어서 여기자들이 들어가는 것을 공사 담당자들은 반대하였으나, 기자들을 못들어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시내에 나가 제물을 사다가 푸닥거리를 한 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적이 설치한 무기들로 인해 우리측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땅굴을 들어갈때는 군에서 준비한 헬멧을 쓰고 들어간다. 북한측 땅굴은 높이가 낮아 머리가 부딪히기 일수다. 일행들의 헬멧이 화강암에 무딪히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머리조심!

북한은 이 땅굴을 남한이 판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북한이 판 증거들이 기술되어 있었다. 첫째는 다이너마이트 장전공 구멍들의 방향이 모두 남쪽이라는 점, 둘째는 배수로에 흐르는 물의 방향이 북쪽이라는 증거, 셋째는 우리는 대형 굴착기에 의한 터널공법인데 반하여 북한은 폭발공법을 쓰다 보니 화강암들이 화약연기에 그을려 검은색이라는 점 등이다. 내가 보기엔 자기네가 안팠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바로 북한이 판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전에서 베트콩들이 미군과 싸워 이길 때 사용했던 땅굴작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김일성은 땅굴을 판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