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일)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사 전문과정 도반들과 함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번지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에 관산을 다녀왔다. 옛날에 청량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놀러 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곳이다. 능관리소에서 나누어 주는 동구릉 안내 팸플릿을 주로 인용하고 참조하여 능에 모신 분들과 조성 연원 등을 간략히 정리하였다.
동구릉은 조선 태조의 능으로 억새풀 봉분으로 유명한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하여 9기의 능이 있다. 동구릉에 모셔진 9기의 능을 포함한 조선 왕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존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구릉 안내책자에 따르면 조선왕조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4기이며 묘가 64기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 하는데,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墓)라고 한다(문화재청(2014), 세계유산 조선왕릉 동구릉, 조선왕릉관리소 동부지구관리소).
동구릉 정문에서 안내 팸플릿을 받고 들어가면 홍살문을 지나게 된다. 홍살문(紅箭門)은 한자로는 홍전문이라 쓰고 홍살문이라 읽는 문으로 무덤의 입구임을 알리는 문으로 동구릉에는 각 능마다 홍살문이 있고 처음 입구에 커다란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능관리소와 재실 건물을 만나게 된다.
수릉(綏陵) - 재실을 지나면 추존 문조(文祖)와 신정황후(神貞皇后)의 능인 수릉(綏陵)을 만나게 된다. 문조는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로 22세에 요절하였다. 효명세자의 아들인 현종이 1834년에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가 고종때 다시 문조로 추존되었다. 신정황후는 효명세자의 세자빈이었으나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차남 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하면서 조선 후기의 정국을 주도한 황후이다. 이 수릉은 철종 6년(1855년)에 용마산 아래에 있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천장한 곳이고, 고종 27년(1890년)에 신정황후가 합장된 합장릉이다.
현릉(顯陵) - 다음에 만나는 능은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이다. 문종(文宗)은 세종의 맏아들로 8세 때부터 29년 동안이나 세자로서 지냈고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조선왕조 최초로 장자가 왕위를 승계 받았으나 건강 악화로 재위 2년여 만인 39세에 승하한 왕이며 단종의 아버지이다. 현덕왕후(賢德王后)는 단종의 어머니로서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떴다.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추봉되었다. 단종이 즉위한 1452년에 문종을 안장하였고, 중종8년(1513년)에 현덕왕후 능을 천장해 문종의 오른쪽에 모셨다. 현릉과 같이 능 안에 왕과 왕비의 능인 따로 있을 때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한다.
목릉(穆陵) - 현릉을 돌아보고 조금 올라가면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의 홍살문을 만난다. 건원릉 입구에서 우측 산길로 접어들면 제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와 인조반정과 관련하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영창대군의 어머니이신 인목왕후의 능인 목릉(穆陵)을 만난다.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능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도록 개방된 능이다. 목릉은 선조의 능과 두 왕비의 능이 모셔져 있어서 동구릉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홍살문에서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신도(神道)는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자각에서 왕비의 무덤을 잇는 길도 지형에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또한 목릉의 정자각(丁字閣)은 조선 왕릉 정자각 중에서 유일하게 다포식 건물인 것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능은 선조 33년(1600년)에 의인왕후를 안장하고 목릉으로 조성한 후 인조 8년(1630년)에 건원릉 서쪽에 있던 선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천장하였다고 한다. 인조 10년(1632년)에 계비 인목왕후가 안장되었다. 목릉에 대해서는 별도로 관산 결과를 포스팅하였다.
모든 왕릉의 신도는 왕릉의 입구인 홍살문에서 정자각(丁字閣)까지 이어진 길로서 박석을 깔아 조성한다.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이 신도로 신(神)이 다니는 길이며 오른 쪽 약간 낮은 곳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이다. 임금은 홍살문 오른쪽에 사방 3자X3자 정도의 크기로 마련된 배위에서 예를 올리고 어도를 따라 정자각에 이른다. 참배객들도 신도와 어도를 걷지 않도록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건원릉(健元陵) - 목릉에서 내려오다 보면 태조의 능인 건원릉으로 향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건원릉은 정자각과 비각까지만 접근이 허용되어 있다. 태종 8년(1408년)에 태조를 안장하면서 조성된 능이며 봉분에는 태조의 고향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풀이 심어져 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 조성제도에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물이다. 정자각은 능 앞에서 제향을 올릴 때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건물로 丁자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다. 어도는 정자각을 바라보고 오른쪽 계단에 연결되어 있고 정자각 뒤편 왼쪽에는 축문 등을 태우는 예감이 마련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산신석이 마련되어 있다.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건원릉을 가까이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홍살문까지 나와서야 멀리서 억새풀이 자라고 있는 봉분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능 관리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능침공간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가까이에서 능을 볼 수 있도록 인공 구조물로 탐방로를 개설하는 방안을 건의하고 싶다.
휘릉(徽陵) - 건원릉 바로 서쪽에는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능인 휘릉(徽陵)이 있다.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고 효종, 현종, 숙종 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 휘릉은 숙종 14년(1688년)에 장렬왕후를 안장하고 조성되었다. 휘릉의 정자각에는 양옆에 익랑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생이다.
원릉(元陵) - 휘릉을 둘러보고 서남쪽으로 내려오면 제21내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이 있는 원릉(元陵) 입구에 다다른다. 영조는 조선 최장수 왕으로 83세까지 사셨고 재위기간만도 52년이며 사도세자를 죽인 왕이기도 하다.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 영조를 안장하여 원릉을 조성하였고 순조 5년(1805년)에 정성왕후를 안장하여 쌍릉으로 조성하였다. 정순왕후는 충남 서산시에 생가가 있는 영조의 계비로 영조의 나이 66세 때 15세의 나이로 계비로 책봉되었다. 사도세자의 죽임에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릉(景陵) - 원릉을 보고 나니 모두들 조금은 지쳐서 움직임이 둔해진다. 원릉에서 내려와 다시 위쪽으로 이동하면 제24대 헌종(憲宗)과 원비 효현황후와 계비 효정황후를 모신 삼연릉 즉, 3기의 봉분이 나란히 모셔진 경릉에 도착한다. 헌종은 8세에 즉위하여 15세에 수렴청정을 거둘 때까지 순조의 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 씨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경릉은 헌종 9년(1843년)에 효현황후를 안장하여 능을 조성한 후 헌종 15년(1849년)에 헌종을 안장하였고 광무8년(1904년)에 효정황후를 안장하였다. 능을 바라보고 맨 왼쪽에 헌종, 오른쪽에 효현황후, 가장 오른쪽에 효정황후를 안장하였다. 경릉은 조선 왕릉들 중에서 유일하게 능을 둘러싼 담장인 곡장(曲墻) 안에 왕과 두 분의 왕비의 봉분이 나란히 모셔진 삼연릉이다.
혜릉(惠陵) -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능이다. 단의왕후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가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숙종 44년(1718년)에 단의왕후를 안장한 후 혜릉을 조성하였다.
숭릉(崇陵) - 동구릉에서 가장 서남쪽에 조성된 능으로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 쌍능으로 조성되어 있다. 현종은 제17대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있을 때 청나라에서 태어난 왕이다. 숙종 즉위년인 1674년에 현종을 안장하여 숭릉을 조성하고 숙종 10년(1684년)에 명성왕후를 안장하였다. 명성왕후는 고종 황제의 비인 명성황후와 이름이 비슷하여 모두들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숭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들 중에서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점이 특색이다.
오전에 입장하여 9기의 능을 돌아보다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촉박한 것이 흠이었다. 선조의 능인 목릉을 제외하고는 정자각까지만 접근이 가능하여 아쉬웠다. 문화재로서 답사를 할 경우에는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답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공부하는 방법일 것이고 개인적으로 답사를 하는 경우에도 정문에서 배포하는 안내 팸플릿을 꼭 읽어보면서 여기에 계시는 왕들과 왕비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답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능의 정자각 건물의 특색 등을 놓치지 않고 보기를 추천한다. 우리가 답사를 갔을 때는 숭릉 입구에 조성된 연못을 수리하고 있었다. 연못이 조성되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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