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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을 다녀오다(1)(동쪽 답사).

아진돌 2015. 12. 19. 17:55

20151029일과 2015113일 이틀에 걸쳐 수원에 가는 길에 시간을 내어 수원 화성을 둘러보았다. 1029일에는 수원 화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북문인 장안문에서 출발하여 동쪽 성곽을 따라 남쪽 문인 팔달문까지 걸었고, 113일에는 장안문에서 출발하여 서쪽 성곽을 따라 팔달문까지 걸었다.

수원 화성은 199712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이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에 의해 축조되었다. 이 화성은 17941월에 착공하여 29개월만인 17969월에 완공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793(정조 17) 112일에 정조는 수원부를 화성(華城)으로 이름을 바꾼후 1794(정조 18) 115일에 수원성 축조에 대해 하명하신다. 정조가 팔달산에 올라가 유천성(柳川城)은 남북이 조금 길게 하여 마치 버들잎 모양처럼 만들면 참으로 의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796(정조 20) 1022일 기록을 보면 화성을 쌓는 공사를 3년 만에 완공시키면서도 백성들을 번거롭게 동원하지도 않았고 국가의 경비를 축내지도 않았었다고 평하고 있다.

 

수원시에서 제작한 관광 안내 리플렛 성곽의 꽃 수원 화성의 소개글에 보면 이 성곽은 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가 4-6m이다. 실학자 유형원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하였다. 오랜 세월과 한국전쟁 등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축조 상황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였다(출처: 수원문화재단,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행궁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 현재는 팔달문 근처 상가 지역만 복원이 안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초기 예상 공사 기간은 10년 이었으나 32개월 3일만에 완성하였고 동·하절기의 공사 중지기간을 제외하면 27개월 25일 만에 완공한 공사이다. 공사기간 뿐만 아니라 예산 역시 총사업예산(당초 예산과 증가된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예산을 남긴 공사이다. 동원된 기술인력도 22개 직종 1,821명이었으며, 정약용 선생이 거중기, 유형거, 대거 등 10종의 신기재 926대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경제 규모로 보면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인 화성 건설이 짧은 기간과 효율적인 자원 활용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완료 된 것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관점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공사이다. 특히 공사 현황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 놓은 점과 현대적 프로젝크 관리 기법인 실명제와 성과급제 등을 적용한 것은 배울 점이 많은 프로젝트 관리의 성공사례인 것이다.

화성을 둘러보면 문화재 측면에서 자세히 보아야할 건축물들이 많다. 수원 화성 관관 안내 리플렛에 기록된 주요 문화재의 소개 자료를 전제하면 다음과 같다.  

1) 출입문

수원화성의 출입문은 동서남북에 설치된 4대 관문과 4개의 암문이 있다. 4대 관문으로는 북쪽에 장안문, 동쪽에 창룡문, 남쪽에 팔달문, 서쪽에 화서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쪽에 설치된 장안문이 정문으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석축으로 쌓아 올린 무지개 문 위에 2층의 문루가 세워져 있고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성문 입구를 둘러싸고 있어서 성문을 부수는 적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들을 공격하기 위한 적대(敵臺)가 설치되어 있다. 북동적대와 북서적대가 장안문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성곽보다 조금 높게 설치되어 있다. 장안문과 팔달문의 2층 문루는 다포식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 있고 공포에 새들이 집을 짓는 것을 막기 위해 명주실 망이 처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철망이 처져 있다.

암문은 적에게 들키지 않고 식량이나 군수물자 등을 성안으로 공급하기 위해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된 문이다. 동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북암문 등이 있다.

 

2) 장대(將臺)

장대는 군사지휘소이다. 동쪽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넓은 마당이 있는 동장대를 만난다. 동장대는 군사를 지휘하기도 하고 훈련하던 곳이다. 서쪽의 서장대는 행궁이 내려다 보이는 팔달산 정상에서 성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서장대는 화성장대라고 한다.

 

3) 치성과 포루

성곽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일정 거리마다 성곽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도록 설치한 구조물이다. 포루는 벽돌로 쌓아 만든 3층인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개가 있고, 치성 위에 누각을 올린 포루로 동일포루, 동이포루, 동북포루, 서포루, 북포루 5개가 있다. 감시장소아기도 하고 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이기도 하다.

 

4) 봉돈(烽墩)

동쪽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벽돌로 만든 굴뚝처럼 생긴 봉돈을 만나게 된다. 화성의 통신시설로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벽돌로 만든 봉화대이다.

 

5) 공심돈

동쪽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벽돌로 만든 특이한 형태의 암루를 보게 된다.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이다. 동북공심돈과 서북공심돈이 있다.

 

6) 수문

화성을 가로지르는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을 가로지르는 수문이다. 북쪽의 북수문은 화홍문이라하고 2012년에 복원된 남수문이 있다. 수원천을 건너는 다리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

7) 노대

노대는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산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다. 동북노대와 서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의 화성장대 바로 뒤에 설치되어 있다.

 

8) 각루

구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설치된 각루이다. 동남각루, 동북각루, 서남각루, 서북각루가 있다.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이라고 하며 주변 경관 잘 어울리도록 설치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건축미를 대표한다고 한다.

 

첨부한 사진들을 장안문에서 동쪽 성곽을 따라 팔달문까지 걸으며 담았던 사진들을 올리고, 그 뒤에 장안문에서 서쪽 성곽을 따라 팔달문까지 걸으며 담았던 사진을 올린다. 편의상 서쪽 성곽을 먼저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