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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노성면 명재 고택 두 번째 답사

아진돌 2018. 1. 28. 09:39


2017년 9월 9일(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전충남지역대학 문화유산답사 동아리를 따라 충남 논산시의 문화 유적지를 답사하게 되었다. 두 번째 답사지로 논산시 노성면 명재 고택을 다녀 왔다. 2주 전인 2017년 2017년 8월 27일에 주역 도반들과 함께 다년 온 후 다시 찾게 되었다.

    

지난번 답사 후 이야기는 명재 윤증 선생의 아버지이신 윤선거 선생의 강도의 변란 이야기와 함께 다음 주소(http://blog.daum.net/agindoll/5862759)에 올렸다. 오늘은 논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nonsan.go.kr/) 에 소개한 글을 전제하고자 한다.

 

명재 고택은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 하며 그 세부 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 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다.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조선 숙종대에 윤증(尹拯)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나 그 세부기법으로 미루어 19세기 중엽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거주하고 있는 윤완식 선생애 의하면 윤증 선생이 이었다기 보다는 윤증 선생 시대에 제자들이 지은 집이고, 명재 선생은 고급 주택이라 하여 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산(尼山)의 산자락에 기대어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하여 놓여 있다. ㄷ자형의 안채가 날개를 펴서 뒤에 배치되었는데 그 앞을 막아 중문간(中門間)의 출입에 방해가 안되도록 비끼면서 동쪽으로 축을 옮겨 가로로 배치되었다. 사랑채 앞은 행랑채 없이 전면이 개방되며 안채 축의 정면에 정갈한 조선식 우물이 축조되었고 그 남서쪽에는 역시 조그만 연못이 조성되었다. 안채 동북쪽 모서리에는 사당채가 있는 데 근래에 다시 복원 한 것이며 사당 주위로 담을 둘러서 공간을 따로 구획하고 있다.

 

안채의 평면구성은 대체적으로 중부방식을 좇으면서도 남도풍(南道風)이 들어가는 특이한 구성이다. 전체적으로는 좌우대칭으로 가로칸은 겹집인 양통 뼈대로, 세로칸은 서쪽을 전후퇴, 동쪽을 전퇴로 간살이를 하고 복판에 3칸 ×2칸의 넓은 대청(大廳)을 두었다. 서쪽날개는 앞쪽으로 부터 2칸부엌, 2칸안방, 웃방이 차례로 배치되며 꺾어져서 웃방 옆은 찻방, 그 앞은 넓은 대청과 연결되는 대청공간이 있다. 안방과 부엌 웃간까지의 전퇴 및 안방 뒷퇴는 모두 툇마루가 놓였으며 웃방의 뒷퇴에는 골방이 놓였다. 동쪽날개는 앞으로부터 2칸 작은부엌, 2칸 안사랑, 마루방, 뒤쪽 모에는 가로 2칸을 건넌방으로 꾸몄다. 안사랑 앞퇴는 툇마루이고 건넌방의 앞칸은 역시 대청이 되어 안대청과 연결되었으며 마루방을 따로 구획하여 이용한다.

 

구조는 양통집과 같이 3평주3량인데 대청중앙만 긴보 5량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모를 굴렸고 장혀를 받쳤다. 그러나 종도리는 굴도리이며 장혀 받치고 소로를 끼워서 뜬창방을 보냈다. 보의 단면은 굴린 네모꼴이며 대공은 높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네모꼴이고 덤벙주초이며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基壇)이다.

 

사랑채는 높은 2단축대(築臺)위에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간살이이다. 동쪽에 대청을 두고 복판 2칸은 사랑방이며 서쪽간은 앞에 높은 누마루를, 뒤에는 사랑부엌을 배치했다. 사랑 앞퇴에는 툇마루가 놓이는데 사랑대청과 연결되며 대청전면에는 문 시설이 없이 개방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도풍의 평면구성이다. 사랑채의 서쪽과 안채 작은 부엌 사이에는 2칸 구들을 두어서 조그만 샛마당을 만드는데 이 건물은 아마도 나중에 만들어 넣은 듯 보인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서 구조기법 등은 모두 안채와 유사하다. 다만 네모뿔대의 높은 주초(柱礎)를 쓰고 화강암 가공석 바른층 쌓기 댓돌과 축대(築臺)를 쓴 점만이 다르다.

  

대문채는 높은 2단축대 위에 자리했다. 맞걸이 5칸집이며 가운데 2칸에 꺾여 통행되도록 대문간을 만들었다. 지붕은 모임이며 평으로 처리했다. 광채는 안채 서쪽에 세로로 배치되었는데 4칸 ×2칸의 박공지붕집이다. 구조는 안채와 같은 3평주3량집이다. 사랑채 앞의 축대와 우물, 연못 그리고 몇그루의 나무들은 당시의 조경미를 느끼게 해준다. 또한 뒤안의 축대와 장독대, 대나무숲의 울창함은 우리나라 살림집 공간구조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출처 : 논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non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