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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진주 의암 (晋州 義巖)

아진돌 2019. 11. 2. 11:52


20191019일에 대전광역시 서구문화원의 제23차 서람이 역사문화탐사에 참여하여 경남 진주시 논개길 16(본성동) 있는 의암(義巖)를 둘러보았다. 남강의 물위에 떠 있는 바위로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선조 26(1593) 629,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 사람들이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7(1629) 진주의 선비 정대륭(鄭大隆15991661)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남쪽에는 한몽삼(韓夢參15981662)이 쓴 것으로 전하는 의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의암의 바닥 넓이는 3.65m×3.3m이다. 옆의 암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띠를 두르고, 의열은 천년의 세월을 흐르리라(일대장강(一帶長江) 천추의열(千秋義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의암 옆 바위에는 진주의암사적비(晉州義巖事蹟碑)가 있다. 이 의암사적비는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명암 정식(明庵 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경종 2(1722)에 세웠다. 영조 16(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의암사적비에는 비각을 건립하여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 이 비는 아래의 의암(義巖)과 마주하고 있어 의기 논개의 순국정신을 한층 더 흠모케 하고 있다. 이 비의 비문에는 그 바위 홀로 섰고, 그 여인 우뚝 섰네. 여인은 이 바위가 아닌들 어찌 죽을 곳을 찾았고, 바위는 이 여인이 아닌들 어찌 의로운 소리 들으랴.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인용 :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http://www.cha.go.kr/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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