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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경북 영천시 거조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5. 20. 08:51

2021년 5월 17일(월)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열 번째 답사지로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청통면 신원리 622)에 있는 거조사(居祖寺)에 다녀왔다. 거조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암자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이었으나, 지금은 거조사(居祖寺)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거조암이라 하여 은해사의 산내암자였으나 지금은 거조사로 되어 있었다. 은해사 홈페이지에서도 은해사 말사로 소개되고 있다.

 

거조사는 영산전에 모셔져 있는 500 나한상으로 유명한 절이다. 영산루(靈山樓)를 지나면 일탑일금당식으로 지어진 삼층석탑과 영산전(靈山殿)이 나타난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불이 협시하고 있다. 과거 연등불이신 제화갈라보살, 현존불이신 석가모니불, 미래불이신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나한상은 가섭존자상이 1번이고 아홉분의 십대제자 다음의 나한상에 2번 번호가 매겨져 있다. 맨 마지막 나한상에는 500번 순번이 매겨져 있으니 정확하게는 10대 제자와 499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인 693년(효소왕 2) 원효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고려시대에는 지눌(知訥)이 송광사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룩하기 전에 각 종파의 고승들을 맞아 몇 해 동안 수행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1182년(고려 명종 12년) 지눌은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동료들과 함께 선정(禪定)을 익히고 힘써 지혜를 닦자는 맹서의 글을 지어 후일을 기약하였다. 1188년 봄에 거조사의 주지 득재(得才)는 지난날 결사를 기약했던 수행자를 모으고, 당시 경상북도 예천의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 머물렀던 지눌을 청하여 처음으로 이 절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하였다. 그 뒤 이 결사는 송광사로 옮겨갔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년)원참(元旵)이 밤중에 낙서(樂西)라는 도인을 만나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本心微妙眞言)과 극락왕생의 참법(懺法)을 전수받아 기도 도량으로도 크게 부각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근래에는 나한 기도 도량으로서 3일만 지성껏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많은 신도들이 찾아들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산전(靈山殿)과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영산전 안에는 청화화상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려 앞산의 암석을 채취하여 조성했다는 석가여래삼존불과 오백나한상, 상언(尙彦)이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 중 법계도(法界圖)를 따라 봉안된 나한상은 그 하나하나의 모양이 특이하고 영험이 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영산전 앞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3.6m의 삼층석탑 1기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조암(居祖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영산전은 국보 제14호.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영산전은 불규칙하게 채석된 장대석(長臺石)과 잡석(雜石)으로 축조되어 측면 중앙에 간단한 돌계단을 가진 비교적 높다란 기단 위에 선 길쭉한 건물이다. 가구(架構)는 간략한 수법으로 되었으며, 측면 중앙간을 형성하는 두 개의 고주(高柱)와 그 앞뒤의 평주(平柱)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있다.

 

고주와 평주는 퇴보로 연결되어 평주 위의 공포에 의하여 퇴보 안끝이 받쳐져 이것이 주심도리를 받치게 되고, 출목(出目)으로 된 첨차는 퇴보 끝을 받으면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고주머리에는 뜬창방(昌枋)을 돌리며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 대접받침)를 두고 역시 포작(包作)으로 대들보 끝을 받아 대들보 끝은 중도리를 받쳤다.

 

대들보 중앙에는 키가 큰 사다리꼴 부재 위에 이중으로 된 포작을 올려 마룻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이 마룻도리는 역시 안으로 굽은 솟을합장으로 받쳐지고 있고, 천장 가구는 전혀 없어 주심포집의 한 특징인 연등천장[椽背天障: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으로 되었다. (중략) 이 건물의 공포의 형태나 마룻도리를 받는 솟을합장의 곡률[曲率: 굽은 정도]이 작은 점 등으로 보아 적어도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無爲寺極樂殿, 국보 제13호)보다 오래된 양식임에는 틀림없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조암 영산전(居祖庵 靈山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