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쇤부르크 지음,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읽다.

아진돌 2023. 12. 30. 09:20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Alexander von Schönburg) 지음, 이상희 옮김(2021),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 서울시: 청림출판(주), 1판1쇄 2021. 9. 10. 1판2쇄 2021. 9. 27.

 

2023년 11월 30일에 폰 쇤부르크의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읽었다.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Alexander von Schönburg)는 1969년생으로 유서깊은 유럽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책의 제목은 진지한 농담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지만, 부제로 올려져 있는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이 이 책의 골자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나는 왜 빛바래진 기사도의 묵은 먼지를 터는가? 그 전에 오늘날 고귀함이란, 예의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나는 이 질문들을 귀족 그리고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논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반문화라는 개념은 이제 박제가 되어 단어만 남아있는 현실이고, 유교적 전통 예절 등은 예절교육관이나 전통체험관에서 어쩌나 접할 수 있는 이벤트로 전락한 상태이다, 비교적 전통이 살아 있는 유럽에서도 귀족문화나 기사도 등은 찾기 힘든 것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정신과 태도에 내재되어 있는 품격(?)인 듯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은 만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사도를 27가지로 정리하여 에피소드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1장 현명함과 제2장 유머로부터 시작하여 제27장 감사함까지 27가지 덕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요약은 저자가 나가는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인 타협이 불가능하며 불변하는 윤리적 기본 진리들을 분명히 깨달아야 비로소 덕, 예의, 선행, 좋은 삶 등도 가능해지기 떄문이다. (중략) 전통적인 덕목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이 책의 시도와 관련해 본 히터가 남긴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로 가는 길에 실수로 형리의 발을 밟자 사과를 건넨 그녀를 어찌 비통한 마음으로 애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사에 알게 모르게 크게 영향을 미친 사상들의 저변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최근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 국왕 즉위식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유럽 귀족들의 전통은 아직도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제3장 열린마음에서 소개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여왕이 우리나라 하회마을을 방문하셨을 때 우리의 김치를 맛있게 드신 후 극찬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어서 우쭐한 적이 있으나, 다음 에피소드를 읽으며 여왕의 열린마음을 알고 고개가 숙여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천 번에 이르는 공식 방문에서 별별 기상천외한 음식을 대접 받았지만,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카리브해와 접한 벨리즈를 공식 방문했을 때는 쥐고기가 나오기도 했다. 나중에 여왕은 토끼고기 맛이 났다(rather like rabbit)라고 전했다고 한다.” 항상 폭넓은 제휴 관계를 맺고자 했던 귀족들은 개방적 태도와 코스모폴리탄적 사고방식을 교육의 핵심 목표로 세울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나로서는 얼굴도 뵙지 못한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밖에서 끼니를 거른 사람을 만나면 집으로 모시고 오셔서 ‘나는 밥 안 먹어도 되니 이 분에게 상 차려 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나는 남을 돕는 것이 미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간 관계에서 지나친 감정이입은 해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공감이 요구하듯 그것을 느끼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요즘은 어른들이 전통을 얘기하면 꼰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의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방식이긴 하나, 그래도 우리의 전통문화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서유럽의 기사도 등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세상인 듯 하다. 길거리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의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고 활보하거나 추리닝 같고 잠옷처럼 보이는 바지를 입고 다니는 분들을 보면서 불편한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