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의 11월 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두 번째 답사지로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도암면 대초리 21)에 있는 운주사(雲住寺)에 다녀왔다. 지난 2017년 10월에 다녀간 후 7년 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라 주저 없이 문화탐방에 참여하였다. 점심 공양 후에는 운주사 주지스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운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운주사(雲住寺)는 천불천탑이 있는 사찰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사찰이다. 현재는 석불 93구와 석탑 21기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시대까지도 많은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 하여 흔히 천불천탑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전해진 사료에는 아직까지 이 점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석불 석탑이 1천구씩 있다는 기록이 있고,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 〔雲住寺在千佛千塔之左右山背石佛塔名一千又有石室二石佛像相異座〕이란 기록이 보이고 있어 현존 석불석탑의 유래를 짐작할 수가 있다.
국가유산포탈의 운주사 소개자료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석불들은 수십 센티미터에서 10미터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 5층, 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 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 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천불천탑은 응회암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운주사 주변의 돌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응회암이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은 주변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응회암을 그대로 떼어내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불상과 탑들이 조성할 수 있었다. 널빤지와 같이 얇게 떠지고 잘 깨지고 부스러지기 쉬운 응회암을 이용하여 제작한 석불과 석탑은 언뜻 보면 투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많은 석불과 석탑을 제작하기에는 적합한 재질이다.
운주사가 있는 이곳은 유네스코 지정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이다. 일주문 앞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안내판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단일의 통일된 지리적 영역으로, 세계적으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명소와 경관을 보호, 교육,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관리되는 곳으로 2015년 제38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공식 프로그램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5개소(제주도,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 전북 서해안권)가 지정되어 있다.
1980년에 있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학계에 알려진 운주사는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었고,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 박물관에서 네 차례 발굴과 석조불감 해체 복원, 원형다층석탑 보수, 일주문 신축, 보제각 신축을 했으며, 1997년에는 와불진입로를 정비하였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연장바위가 있다. 석공들이 연장을 놓고 갔다는 바위이다. 주지스님 설명으로는 원래 당우들은 연장바위 바깥 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석불과 석탑을 만들던 스님들은 이곳에 연장을 놓고 당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연장바위 바로 뒤에는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화순운주사구층석탑 (和順雲住寺九層石塔)이 있다.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위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가운데 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러하며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화순운주사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層石塔)과 화순운주사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雙交叉紋七層石塔)을 지나면 광배석불좌상을 만난다. 운주사 석불 중에서 유일하게 광배가 있는 불상이다. 옆에는 두 구의 석불에 세워져 있다. 가운데 있는 입석불의 뒷면은 응회암으로 만든 석불인데도 매끈매끈하다. 뒷면을 쓰다듬으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다. 옆에 있는 석불 뒷면과 비교해 보면 신기하게도 매끈매끈하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화순운주사석조불감(和順雲住寺石造佛龕)을 뵙게 된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 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남쪽 방향으로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고, 북쪽 방향으로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두 불상은 특이하게도 등을 맞댄 쌍배불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석조불감 뒤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원형석탑이 있다.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형태에서 일반적인 석탑의 형태를 따르지 않은 특이한 모양의 석탑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주 남산에 있는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의 좌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이다.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 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 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여서, 화순운주사원형다층석탑 (和順雲住寺圓形多層石塔)으로 명명되어 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미륵전과 산신각이 있고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대웅전 뒤편 언덕에 화순운주사원반형석탑(和順雲住寺圓盤形石塔)과 사층석탑(四層石塔)있고, 그 뒤 절벽에는 화순운주사마애여래좌상(和順雲住寺磨崖如來坐像)이 있다. 석불군 마 지역 앞에는 스님들의 공양 그릇인 발우를 닮은 원형 그릇 모양을 쌓아 놓은 화순운주사발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鉢形多層石塔)을 볼 수 있다. 지금은 4개의 발우 모양이 놓여 있지만, 예전의 자료에 보면 7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는 바닥에 두 개가 놓여 있다.
석불 군 마 지역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간 후 계단을 따라 산 중턱으로 올라가면 불사바위(佛事岩)가 있다. 운주사 석불과 석탑을 만들 당시에 도선국사가 이 바위에 앉아 공사 감독을 하였다는 바위이다. 방위에 올라가면 도선국사가 앉았다는 자리가 편안한 의자처럼 파여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입구의 구층석탑부터 대웅전까지 운주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운주사에 가시면 꼭 불사바위에 올라가서 운주사 전경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화순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로 알려진 와불을 참배할 수 있다. 주지스님 설명으로는 운주사의 모든 불상들을 와불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올라가는 길에는 널따란 거북바위가 있고 거북 바위 위에는 화순운주사거북바위오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五層石塔)과 탑신에 X자형 문양이 새겨져 있는 화순운주사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이 있다. 거북바위의 지기를 누르기 위해 오층석탑을 쌓았다고 한다. 거북바위 밑에는 석불군 바로 구분해 놓은 불상들이 있다.
와불을 뵙기 위해 올라가다 보면 우측에 석불 한 분이 세워져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와불의 협시불이 이곳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와불은 두 분만 조각되어 있다. 전에는 와불 근처까지 접근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울타리를 치고 관람객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화순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로 불리는 이 와불은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이 와불이 일어나면 천지가 개벽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와불을 참배하고 남쪽 길로 가다 보면 천불천탑을 세울 때 응회암을 따내던 채석장이 있다.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칠성바위가 있다. 7개의 커다란 원반형 돌이 북두칠성을 상징하듯 놓여 있다. 칠성바위 앞에도 화순운주사칠성바위앞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星바위앞七層石塔)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는 7개의 원반을 찾기가 쉽지 않으나 신심을 발휘하여 모두 찾아보기 바란다. 이 칠성바위의 전체 모습은 건너편 동쪽 산 중턱으로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칠성바위를 구경하고 9층석탑이 있는 곳 남쪽 입구 쪽으로 다시 내려와 석불군 가 지역 위로 올라가면 동쪽 탐방길이 열려 있다. 대웅전 쪽으로 걸어가다 전망대에서 보면 칠성바위와 칠성바위앞칠층석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산 중턱의 높직한 암반 위에 있는 화순운주사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을 보게 된다. 모서리 기둥 사이의 면석에는 가늘게 층에 따라 7~11선의 종선문을 음각하였는데 각 층이 똑같은 형태이다. 각 층의 옥개석 하면에는 받침을 생략하고 대신 마름모꼴을 음각하였다. 현재 6층까지 탑신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7.2m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이렇게 운주사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석조불감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 대웅전과 지장전이 있는 곳을 참배할 수 있다. 대웅전 현판은 노천당(老天堂) 월하대종사(1915~2003)께서 쓰신 휘호로 만들어져 있다. “언제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라.”는 월하 스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더 새겨보게 된다. 빨간 열매를 맺고 있는 호랑가시나무가 멋지다. 대웅전 불단 윗면에는 천수관음보살님이 계시다. 대웅전에 들르면 꼭 뒤쪽에도 가보시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포탈의 소개 글을 중심으로 주요 석탑 위주로 답사 후기를 적었다. ‘석불군 가’부터 ‘석불군 바’까지의 사진을 첨부하고 일주문으로 나오며 줄지어 세워져 있는 불상들을 본다. 이 석불들은 1997년 제2회 화순 운주대축제 개최 당시부터 해마다 한 구씩 제작한 것을 모셔놓은 것이라고 한다. 2017년에 왔을 때 이런 설명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이번 탐방을 통해 내력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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