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창원 세스페데스 공원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5. 2. 23. 15:31

2025년 2월 21일(금)에 남파랑길 2구간(창원 구간) 7코스를 걷기 위해 진해구 제덕동 제덕사거리로 가는 길에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1257에 있는 세스페데스공원을 둘러보았다. 스페인 신부의 이름을 딴 소공원이라 우리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소공원이다. 창원시 진해구 웅천읍성 근처에 있다. 이 공원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스페인의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된 소공원이다.
 
창원시 공식 블로그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그레고리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ospedes)(1551~1611) 신부는 스페인 출신으로 1593년 12월 27일 한국에 첫발을 내딛은 신부이시다. 조선에 최초로 온 서양인이자 임진왜란을 목격한 서구인이었으며, 조선에서 일 년 정도 머문 후 일본으로 들어갔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내한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델란드 신부 하멜보다 60년이 앞선 때였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1551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살라망카 예수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1569년 1월 28일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는 신부가 된 후 1577년 일본으로 들어가 34년간 일본의 천주교 전파를 위해 일했다.
 
1592년 4월에 부산포로 상륙한 일본군 선봉대가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1593년 12월 27일에 임진왜란 중에 일본 교구장이었던 페드로 고메스(Pedro Gomez) 신부의 요청으로 세스페데스 신부는 조선을 방문하여 1년여 동안 체류하였다. 신부가 조선에 오게 된 배경에는 일본군 제1군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들이었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웅천왜성을 완공할 즈음에 세스페데스 신부를 초청한 것이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1593년 12월 27일 진해구 웅천에 상륙해서 1595년 6월 초순까지 1년 6개월가량 머물며 웅천왜성과 주변성에 있던 왜군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미사 집전과 교리 강론을 하고 이교도(異敎徒) 병사들에게도 세례를 주는 등 목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 종군 신부이면서도 조선에도 포교를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학자의 연구결과로는 “세스페데스 신부는 ‘조선에도 필히 그리스도교를 포교하고 싶다’는 열의를 가지고 몇 번이나 웅천왜성을 벗어나 조선 사람들에게 접근하려고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방한 활동은 그와 친분이 두터운 고니시 유키나가 등 다이묘들의 요청에 따라 비밀리에 취해진 것이었으나,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방해에 의해서 ‘조선을 넘어 명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하겠다’는 큰 뜻이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세스페데스 신부는 조선을 떠나게 되었다.
 
창원중앙역에서 215번이나 220번 시내버스를 타고 상남도서관 환승센터에서 3006번 급행 시내버스로 갈아탄 후 세스페데스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큰 사거리에 인접해 있는 공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입구에는 바다를 건너온 서양인의 모습을 조각한 조형물이 있고, 그가 태어난 스페인의 상징적인 문화유산의 하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림과 컬럼버스 기념비 등이 조각된 조형물이 있다. 공원 중앙에는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스페인의 문화를 소개하는 사진들이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토마토 축제, 카스텔 축제 등을 소개하는 그림과 스페인 투우, 플라멩코 사진이 설치되어 있다.
 
기념비 뒤로는 진해 남문동 유적 기와가마 전시장이 있다. 유리 커버로 덮여 있는 가마터 조형물은 유리에 이술이 맺혀 있어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안내판에 따르면, 창원시가 진해구 남문동 일원에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기 위해 2008년 5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총 12개 지점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중 조선시대 기와 가마가 밀집한 9개 지점에서 삼국시대 기와 가마 2기와 석실묘 10기, 조선시대 기와 가마 22기, 기타 수혈 다수가 조사되었다. 조선시대 기와 가마 22기는 1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하식 가마로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가마터로 추정되고 있다. 진해 남문동 유적 기와 가마 3호는 조선시대 기와 가마로 기와 가마터(9 지점)의 구릉 사면 상위(해발 18m~21m)의 중앙부에 조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기와 가마 22기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공원 주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철제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소공원에서 제덕 사거리로 가다 보면 쌍효려(雙孝閭)가 있다. 효자 호조참판 서지순(徐志淳)과 효부 경주 이씨의 려(閭)이다. 려(閭)는 마을의 입구나 길가에 세운 문을 의미한다.

▲ 스페인의 대표적 유적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컬럼버스 기념비
▲ 스페인 광장
▲ 스페인의 대표적 축제 - 토마토 축제와 카스텔 축제
▲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
▲ 진해 남문동 기와 가마 유적 안내판
▲ 지하식 기와 가마 모형 - 아침이라 그런지 이슬이 맺혀 보이지 않는다.
▲ 남문동 유적 9지점 모형
▲ 탁본 체험장
▲ 고경호 작가의 '흔적'
▲ 문인수 작가의 '집을'
▲ 김인겸 작가의 '빈공간'
▲ 금중기 작가의 '시간의 반'
▲ 효자와 효부를 기리는 쌍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