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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경남 고성군 고성박물관과 송학동 고분군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5. 12. 24. 20:50

2025년 12월 16일에 경남 고성읍에 있는 업체에 출장을 가는 길에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송학로 113번길 50(고성음 송학리 470)에 있는 소가야 시대 왕릉으로 알려져 있는 송학동 고분군과 고성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고성읍여객자동차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의 명칭이 이렇다)에서 내린 후 주변을 보니 평지에 고분군이 보인다. 2017년 4월 22일에 다녀간 후 8년 8개월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박물관 전시실은 새롭게 리모델링이 되어있었다.
 
2023년에 송학동 고분군은 ‘가야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커다란 봉분이 보인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안내길을 따라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3기의 왕릉과 주변의 작은 능들을 볼 수 있다. 능 건너편에는 고성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소개하는 세계유산 설명자료를 보면, ‘가야 고분군’은 한반도 남부에서 1세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있었던 고대의 여러 정치 집단체제였던 가야연맹국들이 조성한 7개의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 유산이다. 7개의 고분군은 경남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경남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 전북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적 분포, 소재지의 특성, 매장 유형, 부장품의 내용물 등을 통해 이 유산은 문화적 공통성을 공유하면서도 자율적이고 수평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었던 독특한 연맹 정치체계의 가야 정치체제를 입증하고 있다. 7개의 고분군은 한반도 남부 여러 지역에 독립적으로 분포하는 7개의 가야 정치체제에서 최상위 지배층들의 분묘이다. 각 고분군은 모두 국가 중심부의 구릉지에 있으며, 고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되어 조밀하게 군집해 있다. 모두 똑같이 기념비적이고 정교하게 조성된 고분은 분산 분포되어 있고, 구릉지의 입지를 찾아 조성하는 관행을 공유한 것으로 보아 동일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았던 대등한 권력을 가진 자율적인 정치체제가 다수 존재했음을 입증한다고 소개하고 있다.(출처: 유네스코한궉위원회 – 가야고분군).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먼나무 열매를 바라보며 큰길로 내려와 걸어가면 고성박물관이다. 입구에는 고성군 동외동 유적에서 발굴된 새무늬 청동기 조형물이 고성박물관 현판 위를 장식하고 있다. 2012년 5월 17일에 개관한 고성박물관은 송학동 고분군과 내산리 유적 등 주요 발굴 상과를 바탕으로 고성의 정체성과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설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에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다. 2022년 실감 기술 등이 적용되었고, 선사시대부터 가야,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이르기까지 고성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립은 1999년~2002년 이루어진 지금은 유네스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사적 제119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 발굴조사의 성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오랜 역사의 침묵을 깨고 고성 소가야의 찬란했던 문화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적 보존정책의 일환으로 박물관 건립이 계획되어 2012년 5월 17일 개관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소가야 유물전시관으로 시작해 고성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고성 전반의 역사와 문화재를 알리고 있다.
 
송학동 고분군에 관하여 국가유산포털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개자료를 보면, 송학동 고분군은 5세기부터 가야연맹의 유력한 해상세력으로 떠오른 소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남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고성분지 중심부의 3개의 구릉에 나누어 분포하고 있다. 5세기 후반에 축조된 1호분과 6세기 전반에 축조된 2·3호분은 구릉지의 정상부에 연접하고 있고, 그 좌우 능선에 봉토분 8기가 위치한다. 고분군은 백제나 일본에서 유행하던 봉분을 먼저 쌓고, 쌓은 봉분을 다시 파내어 석곽이나 석실을 축조하는 분구묘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흙을 쌓아 구릉처럼 만든 뒤 돌무덤방을 만든 가야 고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봉분의 축조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1~3호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은 소가야의 대외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1호분에는 대가야 토기와 마구, 일본 토기, 2호분에는 백제, 일본 토기와 마구, 3호분에는 신라의 청동 그릇과 마구가 부장되어 소가야가 가야연맹의 교역 창구였음을 증명한다. 송학동 고분군은 백제-가야-왜를 연결하는 해양 교역의 창구였던 소가야의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 고분군이다.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들이다. 가장 높은 곳에 1호 무덤이 있고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6기의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에 기원리 무덤들이 있고, 동쪽으로 300∼400m 거리에 송학동 조개더미가 있어, 삼국시대 소가야국의 자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1호 무덤은 겉모습에서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무덤인 전방후원형 무덤으로 보여지기도 하나, 이들 7기의 무덤은 1호 무덤인 무기산 무덤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1호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는 딸린무덤(배총)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호 무덤은 좋은 위치와 무덤의 규모 등을 생각했을 때 이 지방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A·D 400년을 중심으로 앞뒤 50년의 범위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쪽에는 고성 동외동 조개더미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조개더미에서는 널무덤(토광묘)·독무덤(옹관묘)·돌널무덤(석관묘) 등의 유적과 청동 투겁창(청동광모)·청동 칼자루 끝 장식(검파두식)·거울조각·불탄쌀·회색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 지방의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송학동 무덤은 동외동 조개더미의 초기철기시대를 뒤 이은 후대 문화를 대표하는 가야 문화 유적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출처: 국가유산포털 – 송학동고분군)
 

▲ 새무늬 청동기
▲ 고성박물관에서 송학동 고분군으로 올라가는 계단
▲ 눈덮힌 송하공 고분군 영상물
▲ 고분의 현실 모습

 

▲ 고분 축조방법
▲ 구멍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