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5. 12. 21. 16:43

2025년 11월 30일에 국립공주박물관을 관람한 후 충남 공주시 왕릉로 37(금성동 산5-1번지)에 있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다녀왔다. 공주박물관 주차장 한쪽 켠에서 한옥마을 사이의 오르막 길을 오르면 공주박물관 후문을 지나게 되고, 백제 웅진 시대의 왕인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의 위패를 모신 전당인 숭덕전을 지나면 무령왕릉과 왕릉원 주차장에 닿는다. 예전에는 송산리 고분군으로 알려져 있던 유적지이다. 1971년 7월에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 백제 왕실 무덤의 주인공과 조성 시기가 확실히 밝혀짐에 따라 명칭만으로도 무덤의 주인을 쉽게 알 수 있도록 2021년 9월 17일,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곳도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백제역사지구로 묶어서 등재된 세계유산은 백제의 옛 수도였던 3개 도시(충남 공주시, 부여군, 전북 익산시)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과 연관된 유적지로는 공산성과 지금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이름이 변경된 송산리 고분군(고대의 무덤이 여럿 모여 있는 지역), 부여 사비성과 관련해서는 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부여 나성, 그리고 끝으로 사비 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유적지로는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가 있다.(출처: https://unesco.or.kr/whc/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공주시 금성동과 응진동 경계에 있는 송산松山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한 백제 웅진 도읍기(415~538) 왕과 왕족의 무덤이다. 총 1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으며, 현재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무령왕릉 주차장에서 웅진백제역사관 옥상을 지나면 왕릉원 입구가 나온다. 출입구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면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는 무령왕릉과 5호분과 6호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무령왕릉 모형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에 비해 훨씬 더 발굴 당시의 실제 모습과 같이 재현되어 있다. 벽돌무덤으로 터널형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부터 무덤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탈(https://www.heritage.go.kr/heri/idx/index.do )에 소개된 글을 전제하면,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들은 모두가 표고 약120m 정도되는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主山)으로 한 중턱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1∼5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현실)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호분은 바닥에 냇자갈을 깔아 널받침(관대)을 만들었는데, 5호분은 벽돌을 이용하였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무덤이면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시기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호분은 원형으로 남아 있으나, 1∼4호분은 조사되기 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외에 벽돌무덤(전축분)으로 송산리 벽화고분이라고도 불리는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정연하게 쌓았다. 널방 벽에는 7개의 등자리와 사신도 · 일월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 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벽돌무덤으로, 모두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으며 긴 배수로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벽돌무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릉의 경우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어 백제사회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절대 자료로 평가된다.
 
송산리 고분군일 때부터 가봐야지 하던 곳을 이제야 가게 되었다. 1971년 7월에 송산리 고분군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에 6호분 옆에서 벽돌무덤의 입구가 발견되면서 1500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혀 있던 무령왕릉이 원형 그대로 발굴된 곳이다.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이 밝혀진 무덤으로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수 많은 부장품(껴묻거리)들을 보면, 기록이 미진한 삼국시대 백제 역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무령왕릉과 왕릉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