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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통영 착량묘에 참배하다.

아진돌 2026. 6. 28. 18:08

2026년 6월 13일(토)에 남파랑길 3구간(고성&통영 구간) 29코스를 걸으며, 경남 통영시 착량길 27(당동 8)에 있는 통영 착량묘(統營 鑿梁廟)에 다녀왔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신 충무공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통영 해저터널 진입로 지붕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전란이 끝난 뒤 1599년(선조 32)에 수군들과 지방민들이 공의 충절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착량 언덕에 세운 사당으로 이순신 사당의 효시라고 한다. 처음에는 초당을 지어 이순신의 초상을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 곳을 지나는 상선들도 빠짐 없이 제사를 모셨다 한다. 1877년(고종 14) 이순신의 10세손인 통제사 이규석(李奎奭)이 기와집으로 중수하여 착량묘라 이름하고, 지방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경내에 호상재(湖上齋)라는 서재를 지었다. 1951년 재단법인 충렬사에서 관리하게 되었으며, 매년 음력 11월 19일 공이 순국한 날에 기신제(忌辰祭)를 모신다.(인용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착량묘).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쫓겨 달아나다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 좁게 이어진 협곡에 이르러 돌을 파서 다리를 만들며 도망한데서 붙인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1598년(선조 31년)에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이를 애통하게 여긴 이 지방 사람들이 그의 충절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착량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정성껏 그를 모셔온 것이 이 사당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979년 동재를, 1980년 고직사를 새로 지어 서원 양식을 갖추었다. 또 다른 사당인 통영 충렬사에서는 봄과 가을로 향사를 하고,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11월 19일 충무공이 돌아가신 날을 추모하는 기신제(忌宸祭)를 지내고 있다.(출처: 국가유산포털 - 통영 착량묘).
 

▲서원 형태를 갖춘 강학공간
▲사당
▲착량묘에서 바라본 통영항
▲해변에서 바라본 착량묘
▲착량묘 입구에 있는 해저터널 진입로 지붕
▲일제는 왜병들이 패퇴하던 곳에 해저터널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