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지리산 연곡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6. 29. 11:33

2026년 6월 14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 6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번째 답사지로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토지면 내동리 1014)에 있는 지리산 연곡사(鷰谷寺)에 다녀왔다. 이번 달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대형버스 4대로 이동하였다. 섬진강변을 달리는 19번 도로인 섬진강대로를 따라가다 피아골 입구로 들어가 한참을 산속으로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오며 연곡사 일주문 앞에 도착한다. 지리산 피아골이 깊긴 깊다. 지리산 피아골 골짜기에 있으면서도 사찰명에 제비 연(鷰) 자가 들어있다. 연기조사가 창건할 당시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리산 피아골에 있는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인도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곡사 창건과 관련해서는 신라시대 연기(緣起) 창건설과 도선(道詵, 827~898) 창건설이 있다. 연기조사는 8세기 중반 구례 화엄사를 중창한 승려로 544년에 활동한 인도승 연기조사와는 다른 분으로 추정된다.
 

▲ 구한말 이후 의병활동과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지금은 멋진 사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엄계 사찰이었던 연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승탑과 승탑비 및 현각선사탑비(979년 건립) 등이 남아 있어 선종계 사찰로 성격이 바뀌었다. 연곡사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슬픈 역사를 보면, 조선 시대 연곡사는 정유재란 때인 1598년 4월 10일에 왜적이 사찰에 들어와 살육을 자행하고 불을 질러 소실된 것을 1627년(조선 인조 5년)에 소요대사 태능(1562-1649)에 의해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1745년)에는 연곡사를 왕실의 위패 제작에 사용하는 신주목을 공급하기 위해 지정된 밤나무 보호구역인 율목주재봉산(栗木主材封山)으로 삼아 연곡사 주지가 도제조가 되었다.
 
구한말(1895년) 율목주재봉산이었던 연곡사는 밤나무 남용으로 사세가 기울어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절이 폐망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1907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1924년 박승봉이 연곡사 경내에 심우암을 창건하고 쌍계사 손범성 스님이 운영하다. 6·25한국전쟁 당시 피아골 전투로 다시 소실되는 아픔을 겪는다. 1965년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겸한 전각을 건립하고, 1981년에 종인스님이 대웅전을 헐고 대신 그 자리에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대적광전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연곡사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물들이 옛날의 번창했음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건립된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과 구례 연곡사 북 승탑 (求禮 鷰谷寺 北 僧塔)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동 승탑비(東 僧塔碑),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소요대사탑(逍遙大師塔),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등 4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구례 연곡사 동 승탑(求禮 鷰谷寺 東 僧塔)

 
승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동 승탑은 어느 분의 사리탑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여 방향을 표시하는 동 승탑으로 불린다. 국가유산포털의 소개자료를 인용하면, 구례 연곡사 동 승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사리탑 가운데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답고 장식과 조각이 정교한 작품이다. 동 승탑의 맨 아랫돌에는 구름 속의 용을 팔각으로 장식하였고, 그 위의 중대석 받침에는 면마다 형태가 다른 사자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목조 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기왓골, 처마, 기와 각 부분의 장식이 매우 섬세하다. 지붕 아랫면에는 구름무늬와 여자 선인(仙人)을 조각해 놓았다. 지붕 마루 측면에 작은 종을 걸었던 구멍이 있고, 그 윗부분에는 잡상(雜像)을 얹었던 흔적이 있다. 탑의 가장 윗부분은 연꽃, 봉황, 보주 등으로 세밀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동 승탑은 도선 국사의 사리가 안치된 탑이라 전해온다. 유사한 형태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이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다. 철감선사(798~868)의 생존 연대와 도선국사((827~898)의 생존 연대를 비교해 봐도 도선국사의 승탑일 가능성이 크다. 일제가 동경대학으로 반출하려고 하여 없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동 승탑).
 

▲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 - 비신은 없어진 상태

 
동 승탑 앞에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求禮 鷰谷寺 東 僧塔碑)가 있다. 이 비(碑)는 동승탑 앞쪽에 서 있는 비로,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잘려진 것을 복구해 놓아 부자연스럽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다.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작고 아담해진 규모와 통념을 벗어난 조각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비로,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인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

 
구례 연곡사 북 승탑(求禮 鷰谷寺 北 僧塔)은 네모난 바닥 돌 위에 세워진 8각형의 승탑이다. 전체적으로 규모와 형태, 각 부분의 장식과 조각이 연곡사 동 승탑과 약간 차이가 날 뿐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기단은 3층으로 아래 받침돌, 가운데 받침돌, 위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 받침돌은 2단인데 아래에는 구름무늬, 위에는 두 겹으로 된 연꽃무늬 16잎을 새겼다. 위 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특히 위쪽의 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迦陵頻迦)를 돋을새김하였다. 탑신의 몸돌 각 면에는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을 꾸며 놓았다. 이 승탑은 연곡사 동 승탑을 모방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 승탑 앞에는 승탑비가 없고 사찰 내에에 현각선사 탑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각선사 승탑으로 추정하며, 8각형 승탑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북 승탑).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는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부도탑 뒤로 보이는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寺 逍遙大師塔)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求禮 鷰谷寺 逍遙大師塔)은 연곡사 서쪽에 있으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 신중상(八部 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있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
 

▲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 - 기단이 3층인 점이 특이하다.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求禮 鷰谷寺 三層石塔)은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 양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연곡사 홈페이지에서 따왔어요.
▲일주문을 지나 뒤돌아 본다.
▲삼홍루
▲삼홍루 - 대적광전 앞에서 바라본 2층누각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 화엄사 말사로 화엄계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관음전에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