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둘러보다.

아진돌 2026. 6. 29. 17:20

2026년 6월 14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 6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세번째 답사지로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66-7에 있는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을 둘러보았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악양면 평사리에 세워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최참판댁 건물과 초가집 등을 조성해 놓은 곳으로 드라마 촬영장으로 쓰인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을 모델로 소설이 쓰여진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1987년 10월 24일부터 1989년 8월 6일까지 KBS에서 대하 드라마 토지가 방영된 후 많은 사람들이 평사리를 찾아 오기 시작했지만, 막상 이곳에는 최참판댁이  없었다. 1997년에 하동군 석민아 공무원이 "최참판댁 건립"을 제안하였고, IMF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상남도 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던 하동 출신 윤상기 공무원(전 하동군수)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최참판댁 건립의 종잣돈으로 10억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하동군에서는 30억원으로 부지 3천평을 구입하여 1998년에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이 현실 세계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박경리 토지문학비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서 내려 가게들이 있는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관광 안내소를 지나 소설 속의 최치수 좌상이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하동군 문화관광해설사 님의 설명을 들으며 최참판댁을 둘러보았다. 행랑채를 지나 안채, 뒤채, 사랑채, 별당 등을 돌아보았다. 최참판댁 옆에는 박경리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뜰에는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있고, 문학관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주제로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박경리 선생은 19690년 6월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에 집필 26년 만에 『토지』 전체를 탈고하였다. 총 5부 25편에 달하는 대하소설이다. 1972년 10월 『문학사상』 창간호부터 『토지』 2부를 1975년 10월까지 연재하게 된다. 이해에 『현대문학』지에 연재되었던 『토지』 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을 받는다.
 

 
박경리(1926~2008) 선생은 1926년 12월 2일(음력 10월 28일)에 지금의 경남 통영시 문화동 328번지에서 박수영(朴壽永)과 김용수(金龍守) 사이의 맏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이다. 아버지는 14살 때 17살 어머니와 결혼하였으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버리고 새로 가정을 꾸려서 박경리 선생은 소박맞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941년에 현재의 통영초등학교를 졸업한다. 가끔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가서 생활비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1945년 진주공립고등여학교(현재의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생각으로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달라고 찾아 갔다가 빰만 맞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지금의 진주여고를 졸업한 이듬해인 1946년 경남 통영군 지석리에서 거제 출신의 김행도(金幸道)와 중매 결혼을 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48년에 남편이 인천 전매국에 취직하여 인천 금곡동으로 이사한다. 1950년에는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현재의 세종대학교, 1948년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로 개편하였다가 1954년에 2년제 수도여자사범대학으로 변경) 가정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황해도이지만 당시엔 경기도에 속해 있던 연안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6·25한국전쟁 때 남편 김행도는 공산주의자 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행방불명 되었다.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후 엄청난 슬픔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회고한 바가 있다.
 
1980년에 사위 김지하 시인의 옥바라지를 위해 서울을 떠나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 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 산양면에 안장되었다.
 


소설 속의 평사리 최참판댁을 현실 세계에 드러낸 이곳에서 우리는 문화관광해설사 님의 멋진 설명을 들으며,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사랑채 마당에서 바라보는 평사리 앞의 넓은 뜰을 보며, 대지주와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 서희를 낳고 가출한 별당아씨가 머물렀던 별당 앞에는 전통적인 한국정원의 모습을 한 연못이 있다. 연못 가에는 『토지』 5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일제의 패망 소식을 전해 들으며 해당화 가지를 훑었다는 이야기 속의 해당화가 심어져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최참판댁에 대해 새롭게 많은 것을 배운 문화탐방이었다.        

 

▲평사리 벌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현실 세계로 모습을 드러낸 숨은 이야기
▲행랑채
▲사랑채
▲사랑채 뒷면
▲뒤채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내외담
▲최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머물던 안채
▲사당 입구
▲사당
▲궁휼기에 밥 짓는 연기가 바같에서 보이지 않도록 낮게 설치한 굴뚝
▲별당
▲별당 앞의 해당화
▲ 박경리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