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0일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우들과 함께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杞溪面)으로 관산을 다녀왔다.
먼저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리에 위치한 파평 윤씨(坡平 尹氏) 시조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893-973) 묘소를 찾아갔다.
좁은 마을 길로 들어서니 마을어귀에 제법 커다란 공터가 있다.
공터에 버스를 세우고 관산을 위해 원우 중에서 윤 선생이 준비한 제물을 갖고 묘소 입구로 들어갔다.
묘소 입구에는 홍살문과 같은 문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봉강재라는 커다란 재실이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칠곡군 윤씨 종친회 사람들이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동안 우리는 봉강재를 둘러 보았다.
봉강재 안의 재실앞을 통과하여 묘소로 들어가니, 잔디밭이 잘가꾸어진 묘소가 있었다.
꿀풀, 큰엉겅퀴 등이 피어있는 곳을 지나 묘소에 올라가 보니 문외한인 우리가 봐도 조망이 멋지다.
이 묘소는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을 파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입수를 잡기도 쉽지 않고 혈을 잡기도 쉽지 않은 자리이며, 입수를 보고 묘를 쓴 것이 아니고
주위 사성법으로 청룡과 백호를 보고 약간 아래로 내려 쓴 것 같다고 하셨다.
포란형국으로 조화를 잘 잡기 위해 당판에서 조금 내려 쓴듯하다고 하셨다.
주산은 봉계산으로 묘하게도 주산 정상에는 멀리서 보면 쪽두리와 같은 커다란 바위가 우뚝 자리잡고 있다.
우측의 백호는 아미형(눈썹 모양)으로 예쁘게 내려와, 왕비를 6명이나 배출한 묘소답다.
우리가 사극 등을 통해 잘 알고 있고 문정왕후, 장경왕후,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 등이 모두 이분의 후손들이다.
시조 태사공은 고려 건국후 제2대 해종이 등극한 후 경주와 평양에는 가장 신망있는 중신을 통하여 다스리게 되었는데,
동경(경주)에는 태사공을 보냈다. 그때 나이 52세였다. 그의 아들은 송악 즉 수도에 볼모로 잡혀있었다.
태사공이 81세에 돌아가시자 파주가 아닌 경주에서 가까운 이곳 포항에 묘소를 정하게 되었다.
(묘소 입구는 수도권의 왕릉과 유사하다)
(봉강재 안내판)
(이 제실 앞을 지나야 묘소로 갈 수 있다)
(제실을 나서면 바로 만나는 표지석들)
(묘소를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면 봉강재가 한 분에 들어온다)
(고려 태사 윤공 신달 지묘)
(신좌을향으로 우측의 백호가 앞에까지 와있고 바로 뒤에는 청룡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의 조산들이 아름답게 펼처져 있다)
(좌측의 청룡과 외청룡 들이 아담하게 싸고 있다)
(우측의 아미형(눈썹형) 백호가 자리잡고 있다)
(우측에 보이는 주산 봉소봉 정상에는 쪽두리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동네에서 바라본 봉소봉)
(태사공 묘소의 산도)
(관산을 하기전에 묵념으로 예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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