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6일(일) 풍수도반들과 함께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밀양박씨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 묘소를 다녀왔다.국당 선생의 묘는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52ㅡ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영동에서 대전으로 가는 구도로 옆에 ‘국당선생묘소입구’라는 비석을 보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선생의 묘소에 다다른다. 우수좌류(右水左流)에 간좌곤방(艮坐坤方)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이 우측으로 한바퀴 돌아 뻗어가고 있는 횡룡에서 내려온 용에서 혈을 맺어 다시 안산을 보는 전형적인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다. 대전에서 영동으로 가는 도로를 개설하느라 우측의 백호를 손상시킨 것이 아쉽다. 묘비와 장명등이 고인의 오른쪽으로 치우쳐 설치된 것이 특이하다. 원래 묘비 자리에는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이 추모비 옆면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撰)은 국당박공묘표(菊堂朴公墓表)가 새겨져 있다. 우암의 글이 새겨진 추모비라고는 하지만 묘비를 제끼고 서있는 것은 조금 어색해 보인다.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1374-1446)은 난계(蘭溪) 박연(朴堧)(1378-1458) 선생과는 사촌간이며 난계 선생 댁이 큰집이다. 할아버지 시용(時庸)은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이었으며, 아버지 천귀(天貴)는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부윤을 지냈다. 사촌동생 박연(朴堧) 등과 김자수(金子粹)의 문하에서 학업에 전념하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9년(1427년)에 “전 현감 박흥생과 그의 아우 박흥거가 토지와 가옥을 다투어 서로 무고하니 이들을 치죄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 현감 박흥생(朴興生)이 그 아우 전 감찰 박흥거(朴興居)와 더불어 토지와 가옥을 서로 다투어서, 흥생은 흥거를 무고(誣告)하기를, "반혼(返魂)한 신주(神主)를 흙덩이처럼 여긴다." 고 하고, 흥거는 그 형 흥생을 무고하기를, "아비의 장삿날에 술에 대취해서 주정을 하였다." 고 하므로, 헌사(憲司)에서 추핵(推劾)하고 모두 반좌(反坐)되어 흥생은 형장(刑杖) 60에 처하고, 흥거는 형장 60에 도(徒) 1년을 처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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