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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풍수학 공부

충북 영동군 심천면 난계 박연(朴堧)의 묘로 관산을 다녀오다.

아진돌 2016. 11. 13. 11:14

 

2016116() 풍수도반들과 함께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밀양박씨 난계 박연(朴堧), 난계 선생의 사촌인 국당 박흥생(朴興生), 국당의 동생인 박흥거(朴興居) 묘소를 다녀 왔다. 선생의 묘소는 영동국악체험촌 입구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자(庚子) 입수(入首)이며 미곤신(未坤申) 방향의 백호들이 눈에 뜨인다. 묘 좌우에는 축대를 쌓아 올려져있어 원래 지형을 살펴보는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시묘살이 시절의 호랑이와의 이야기를 전하는 묘비와 함께 호랑이 무덤이 선생의 무덤 아래에 있다.   

  

난계(蘭溪) 박연(朴堧)(1378-1458) 선생의 묘소는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49-1에 있으며, 충북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연(朴堧) 선생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密城大君)을 시조로 하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시다. 자는 탄부(坦夫)이고, 호는 난계(蘭溪)이다. 충청북도 영동(永同)에서 태어나 81세로 고향의 고당리(高塘里)에서 죽었다. 할아버지 시용(時庸)은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이었으며, 아버지 천석(天錫)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선생은 태종 11(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고 세종 때는 악학별좌(樂學別坐)에 올라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단종 때까지 4대 왕을 모셨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9(1427)에 악학별좌(樂學別坐) 봉상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1틀에 12개 달린 석경(石磬)을 새로 만들어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 원년(1452)의 기록을 보면 중추원 부사(行中樞院副使)로 관직을 제수하면서 평한 글이 있다. “박연은 사람됨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우며 사치스러움이 없었다. 음률(音律)에 정통하여 세종(世宗)의 인정을 받고 종률(鍾律)을 만들었다. 일대의 음악이 찬연하여 볼만한 것은 모두 박연의 힘이었다. 이에 이르러 자헌대부(資憲大夫) 로 가자(加資)되니 사람들이 적당하다고 하였다.”

  

박연(朴堧) 선생은 고구려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린다. 일부 카페글이나 블로그 중에는 박연(朴淵)으로 표기한 글로 보이는데 朴淵은 개성시 북쪽에 있는 폭포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