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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계룡산 대자암

아진돌 2020. 10. 9. 16:03

2020년 10월 4일 오후에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계룡산 대자암(大慈庵)에 다녀왔다. 대자암은 계룡산 골짜기에 꼭꼭 숨겨져 있는 갑사(甲寺)의 산내 암자이다. 갑사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대성암 입구로 가면 우측 연천봉 가는 쪽으로 임도가 이어진다. 이 길로 한참을 올라가면 대자암이다. 입구에는 ‘참선도량이오니 일반인은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참선하시는 스님들께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갖고 조용히 발걸음을 계속한다. 동행한 도반이 대성암에서 머물 때 자주 갔었다고 하면서 앞서가니 용기를 내어 따라갔다. 웬만한 신심이 아니면 발걸음을 계속 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호젓한 길을 걸어 올라온 것이 아까워 조용히 암자로 들어가 본다.

   

안마당에 올라서면 암자의 규모에 놀란다. 예전에는 대자암 불당 앞쪽으로 가파른 입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승용차가 올라올 수 있도록 우측으로 길이 나 있다. 안마당에서는 계룡산의 문필봉, 관음봉, 연천봉이 보인다. 대자암(大慈庵)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법당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지장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이 협시로 계신다. 법당에 앉아 신묘장구대다라니경 21독과 함께 천수경을 일독한 후 암자를 둘러보았다. 입구에는 선방인 일심당(一心堂)이 있고, 주지 스님이 계시는 아담한 건물과 무문관(無門關)인 삼매당(三昧堂)이 있다. 삼성당(三聖堂)이 있으면서도 칠성각(七星閣)과 산신각(山神閣)이 또 있는 것이 이곳만의 특색이다.

  

대자암은 1965년 도봉산 천축사에 최초의 무문관(無門關)을 건립한 영파당 정영(瀞暎) 대종사(1923-2007)가 1993년 폐허가 된 대자암에 다시 무문관을 개설하고 입적 때까지 머물며 수행했던 곳이다. 정영스님께서는 2007년 12월 24일에 이곳 대자암에서 세수 84세(법납 65세)로 입적하셨다. 도봉산 천축사와 이곳 대자암에 무문관(無門關)을 창건한 정영(瀞暎)스님이 폐허화 되었던 이곳에 들어오셔서 삼매당(三昧堂)을 짓고 5개월 동안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무문관을 개설한 암자이다.

  

무문관은 문자 그대로 문이 없는 수행공간으로 부처님의 6년 고행을 기념하여 누구든 무문관에 입방을 하면 6년간 선불교의 좌선 속에 수행을 해야 했다고 한다. 무문관에서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밥만 넣어주면서 일체의 외부와 접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하게 하는 선방이다. 『月刊 해인』 341호(2010.7)에 실린 <문 없는 문 계룡산 대자암> 글에 소개된 10년 전의 문무관 이야기를 아래에 옮겨 놓는다. 2007년에 정영 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최근에는 무문관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감히 출입금지 표지가 있는 삼매당에는 내려가 보지 못해서 현재도 수행 중인 스님들이 계시는지 확인할 엄두를 못 냈다. 아마 예전의 용맹정진하는 모습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정영 스님은 불교 정화와 종단의 기틀을 세운 주역으로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받아 6년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치열하게 수행에만 전념하는 무문관을 개설 선종의 수행 풍토를 일신시켰다. 무문관 수행은 일반 선원과는 크게 다르다. 일반선원은 큰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좌선하고 울력하면서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동·하안거 3개월씩 수행한다. 선원 밖으로 나가진 않지만 간단한 운동도 하고 산길을 보행하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무문관 수행은 철저히 혼자다. 2~3평의 작은 공간에서 폐문 정진으로 오직 홀로 길 없는 길, 문 없는 관문을 뚫어야 한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외부와 일체 차단된 독방에서 수년간 생사를 걸고 매달려야 하는 혹독한 수행이다. 하루에 단 한 번, 공양을 넣기 위해 뚫어 놓은 네모난 구멍이 세상의 호흡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다.

   

천축사의 무문관 전통이 이어져 온 대자암은 삼매당과 제2무문관, 시방당 세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자암 삼매당엔 12명의 스님이 3년 결사로 수행 중이며 그중 3명은 6년 결사로 면벽수행에 몰두하고 있다. 무문관 3년 해제철이 되면 전국에서 수백 명의 선객이 방부를 들이기 위해 몰려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에서 밀린 선객들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폐교를 임대해 개설하게 된 부여의 제2무문관은 13명의 스님이 칼날 같은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화장실과 세면장이 딸린 작은 방에서 3년 동안 묵언과 일종식으로 사시에 공양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일체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시방당은 시민선방으로 비구, 비구니 스님과 재가자 38명이 한철 결제로 마음자리를 밝히고 있다. 특히 선원장 스님이 직접 참여하는 재가자 용맹정진과 매주 토요일에 이어지는 철야정진은 대자암의 수행 열기를 더해 준다. 삼매당 문고리에 굳게 채워진 자물쇠, 벽 아래 뚫린 작은 구멍, 신발 위에 뽀얀 먼지가 선객의 흔적을 말없이 대신해 준다. 그것뿐이다. 더 이상 무엇이라곤 없다. 사방이 막힌 무명 속에서 묵언과 정진, 그리고 두껍게 내려앉은 긴 침묵이 겹겹이 지키고 섰을 뿐이다.(출처 : 김선주(2010), “문 없는 문 계룡산 대자암”, 『月刊 해인』 341호, 2010년 7월, http://haeinji.org/contents/?wno=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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