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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산청군 지리산 대원사

아진돌 2021. 5. 9. 17:14

2021년 5월 8일에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455(삼장면 유평리 2)에 있는 지리산 대원사에 다녀왔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리산 대원사라하면 지리산 종주의 종착지라서 이름을 많이 듣는 절이다. 지리산 종주 코스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종주는 화대종주이다.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대원사까지 당일에 주파하는 종주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는 당일 종주를 한 적이 있으나 화대종주나 성삼재에서 대원사까지 종주하는 성대종주는 해보지를 못했다. 지리산에 갈 때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사찰이었는데 오늘에야 큰 마음을 먹고 차를 몰았다. 자동차 연료 게이지는 붉은 줄에 가 있어서 마음은 조금 조마조마한 상태로 남원에서 산청군으로 넘어가서 대원사에 도착했다. 지리산이 큰 산이라고 해도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절이 있고 대원사를 지나서 그 위로도 마을이 있다는게 여간 신기하지 않다.

 

대원사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선방인 것을 처음 알았다. 방장산 대원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누각인 봉상루(鳳翔樓)는 수리 중이라 자세히 볼 수가 없었고, 선방으로 쓰이고 있는 사리전과 사리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은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산지 가람인지라 대웅전과 원통보전(圓通寶殿), 응향각(凝香閣) 등 전각들이 처마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일자로 배치되어 있고, 명부전만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명부전을 제외한 전각들이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오후에 도착하니 사진을 담기가 무척 어려웠다. 전각들의 전면 사진을 담으려니 역광이라 어쩔 수 없이 측면에서만 담게 되었다.

 

대원사 홈페이지(https://www.daewonsa.net/)에 따르면, 대원사는 지리산의 천왕봉 동쪽 아래에 진흥왕 9년(548)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라 하였다. 그 뒤 폐사되었던 것을 조선 숙종 11년(1685년)에 운권스님이 다시 절을 짓고 대원암이라 불렀다. 고종27년(1890년)에 구봉스님이 낡은 건물들을 보수 중창하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그러나, 1948년 여순반란사건 당시 진압군에 의해 완전히 전소된 뒤 탑과 터만 남게 되고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1955년 9월 ‘지리산 호랑이’라 불렸던 당대 3대 여걸 만허당 법일(法一, 1904~1991) 스님이 들어오시면서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이 되었다. 스님은 일심전력으로 중창불사를 전개하여 오늘날 대원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어 경남 양산 석남사, 충남 예산 견성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허당 법일 스님은 대원사에 들어오자마자 비구니 선원부터 개설했다. 대웅전과 원통보전, 응향각, 산왕각, 봉상루 등을 새로 지었고, 사리탑 뒤쪽의 사리전은 비구니 스님이 참선 정진하는 선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보물로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조성한 다층석탑이 있으며 부처님 진신사리 58과가 봉안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6.6m며 화강암으로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신중도’와 ‘반자도’는 유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으며, 대원사 계곡(유평계곡)은 지방문화재 1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늘 하루에 전북 장수군의 죽림정사와 남원 실상사에 이어 경남 산청군 대원사까지 일일 삼사 답사를 마친 셈이다. 대원사에서 돌아오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산청 방향으로 가는 고갯길 대신 하동 방향의 남쪽 길을 택했다. 내려가다 보니 중산리 가는 길과도 만나고 남사 예담촌마을 옆을 지나는 길이었다. 조금 가다가 주유소를 만나 연료를 꽉 채우고 나니 나무 관세음보살님을 저절로 부르게 되었다. 조금 돌기는 하였으나 단성 IC를 통해 대전-진주 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