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세종시 초려공원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2. 2. 13:08

2022년 1월 31일 설날 하루 전인 그믐날에 세종특별자치시 도움1로 40(어진동 517)에 있는 초려역사공원을 찾아갔다. 가재마을 10단지 제일풍경채에듀파크 아파트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세종특별자치시를 건설하면서 훼손될 위기에 처했으나 종친들과 학계의 건의에 따라 조성된 소공원이다. 세종시에서 제작한 공원 안내 리플렛에 따르면 초려역사공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며 개혁사상가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묘소 일원에 조성한 곳이다. 2015년에 완공된 공원 안에는 초려 선생의 묘소와 갈산서원이 복원되어 있다.

 

초려 이유태 선생은 본관이 경주이며, 자는 태지(泰之)이고 초려(草廬)는 호이다. 본래 한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민재문(閔在汶)에게 배우다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과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부자를 사사하였으며, 율곡 선생의 학문을 이은 기호학파의 학맥을 계승하였다. 사계와 신독재 문하의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尹宣擧), 유계(兪棨)와 더불어 호서산림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의 큰 뜻을 품고 초야의 여러 선비들을 등용하였을 때 초려 선생은 효종의 뜻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십여 년 동안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방안을 구상하여 장장 4만 여자에 달하는 장문의 상소문인 기해봉사(己亥封事)를 완성하였다. 기해(己亥)년은 효종의 뒤를 이은 현종이 즉위한 원년인 1660년이다. 기해봉사(己亥奉事〉는 1660년(현종 1년)에 조정에 올린 글로서, 군주와 신하의 역할, 경연, 학교 등 7가지 항목을 들어 그 실책과 시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상소문으로 회자되고 있다. 공주대학교 이달우 교수 등이 번역하여 단행본으로 발간된 번역본으로라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갈산서원은 초려 이유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으로서 1694년(숙종 20년)에 상연당(賞蓮堂) 임우직(林遇稷) 등의 지역 사림(士林)의 발의로 공주목 삼기촌 갈산(현, 어진동)에 세워졌다고 한다. 갈산서원은 이유태 선생의 묘역을 보존하기 위해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현재의 자리에 복원하여 세웠다. 서원이지만 서쪽을 향하고 있는 강학공간만 있다. 내삼문인 연영문을 지나 왼쪽에 동재인 도산재, 오른쪽에 서재인 몽양재가 있고 정면에 갈산서원이라는 현판이 있는 건물이 있다. 팔작지붕이지만 공포는 기둥에만 있는 주심포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겉보기와 다르게 건물이 부실하여 비가 오면 지붕에서 빗물이 샌다는 글이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아마 적은 예산으로 큰 건물을 짓다 보니 그렇게 되지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초가집이라는 뜻의 초려(草廬)를 호로 사용하신 선생의 뜻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서원 앞에는 3기의 묘가 있다. 가운데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자리잡고 있는 초려 선생의 묘가 있다. 아파트 숲속에 파묻혀 있어서 안타깝다. 선생의 묘소 우측에는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자리잡고 있는 초려의 장남 묘가 있고, 앞쪽으로는 손자 묘가 자리잡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 많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기념식수로 여러 그루의 백송이 심어져 있다. 너무 촘촘히 심어진 것이 아쉽지만 많은 백송이 자라면 세종시의 명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산서원 좌우에 심어져 있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도 무탈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