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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연산면 돈암서원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2. 6. 19:48

2022년 2월 4일 설 연휴 기간에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에 있는 돈암서원(遯巖書院)에 다녀왔다. 돈암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계 선생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1634년(인조 12년)에 창건한 서원이다. 1660년(현종 원년)에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이며, 대원군이 서원 훼철령을 내려 전국에 47개 서원만 남길 때도 보존되었던 서원이다. 2019년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할 때 포함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1번 국도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한번 가봐야지 하던 곳이다. 대전 인근이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언제든지 가 볼 수 있는 서원이라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더 늦지 않게 가보고자 설 연휴에 다녀왔다. 서원 입구에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1번 국도에서 들어가는 입구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다만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약간 어수선하였지만 한적하여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만 내삼문이 잠겨 있어서 숭례사(崇禮祠)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담 넘어로 들여다보는 실례를 범하였다.

 

1634년에 창건할 때는 서원이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연산면 하암리 숲말 산기슭에 있었으나, 1880년(고종 1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서원은 평지에 강학공간 뒤로 사당이 자리잡고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학공간 뒤에 있는 내삼문 안쪽에는 예를 숭상하다는 의미의 숭례사(崇禮祠)가 자리잡고 있다. 예학을 크게 일으킨 사계 김장생 선생과 사계 선생의 아들이신 신독재 김집, 제자인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논산시에서 발행한 돈암서원 리플렛에 따르면 이들 네 분은 모두 문묘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돈암서원은 선정서원이기도 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바깥 대문인 외삼문(外三門) 바깥쪽 정면에는 2006년에 건축된 산앙루(山仰樓)가 있다. 산앙루에서 바라보면 연산평야 뒤로 멀리 금남정맥의 산기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외삼문 오른쪽에는 돈암서원 이건비 등이 세워져 있다. 입덕문(入德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응도당(凝道堂)이 있다,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은 서원이 창건되기 한 해 전인 1633년(인조 11년)에 건축된 건물로 옛터에 남아 있던 건물을 1971년에 이전하였다고 한다. 돈암서원(遯巖書院)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안쪽에 걸려 있다.

 

소슬 3문으로 꾸며진 외삼문인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김장생 부자의 업적을 적은 돈암서원 원정비와 강학공간인 양성당(養性堂)이 있다. 양성당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거경재(居敬齋)와 정의재(精義齋)가 있다. 바깥채의 안쪽 대문인 내삼문(內三門) 뒤로는 사당인 숭례사가 있고 내삼문 담장에는 지부혜함(地負惠函), 박문약례(博文約禮), 서일화풍(瑞日和風) 등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내판에는 돈암서원 꽃담이라고 표지되어 있다. 이밖에 김장생의 부친인 김계휘가 후학을 가르치던 정회당(靜會堂)과 장황강실기(黃岡實記), 사계유고(沙溪遺稿),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등의 목판이 보존되어 있던 장판각(藏板閣), 제사에 필요한 도구를 보관하던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다.

 

율곡의 학풍을 이어받아 기호학파를 형성하고 예학을 크게 일으킨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김집, 1574〜1656), 사계와 신독재의 제자들인 우암 송시열(1607〜1689)과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을 배향하고 있는 돈암서원은 충남의 자랑거리이다. 논산시에서도 돈암서원 앞쪽의 논 등을 정리하여 산책길을 조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