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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여주 신륵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5. 5. 16:55

2022년 5월 1일(일)에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천송동 282)에 있는 신륵사(神勒寺)에 다녀왔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륵사 홈페이지(http://www.silleuksa.org/)에 따르면 어느날 원효 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이ㅛ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원효 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주자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에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일주문과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왼쪽으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이고 금당인 극락보전(극락보전)이 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극락보전 앞 마당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신도를 맞이하고 있다.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신검당이 있고 왼쪽으로는 적묵당이 있는데 적묵당은 현재 수리중이었다. 극락보전에 도착했을 때는 사시예불이 막 끝나나고 있었다. 법당에 앉아 신묘장구대다리니 21독과 함께 천수경과 반야심경, 화엄경 약찬게까지 암송하고 법당을 나오니 법당 일을 하시는 보살께서 쫒나오시며 초하루 떡이라고 떡을 한 봉지 싸주셨다. 너무 감격했다. 이렇게 마음씨 좋은 분이 계시는 절이라 더욱 정감이 갔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숫나무여서 많은 수꽃을 달고 있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암나무로 많은 은행 열매를 맺는 것과 대조적이다. 숫나무라 예전에는 절 살림에 보탬이 안되었을텐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꾸로 요즘은 은행나무 숫나무가 더 인기가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극락보전 뒤쪽으로는 조사당, 명부전, 관음전이 있고 오른쪽 뒤로는 삼성각이 있다. 명부전 옆에는 재를 모신 후 영가들을 전송하는 봉송각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남한강 옆에는 신륵사를 상징하는 벽돌탑인 다층 전탑이 있고 그 밑으로는 삼층석탑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일주문에서 불이문까지의 공간에 나무 등이 없어서 황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고 남한강 옆이라 절이라기보다는 유원지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신륵사가 대찰을 이루게 된 것은 나옹이 이곳에서 갖가지 이적을 보이면서 입적하였기 때문이다. 나옹이 입적할 때 오색 구름이 산마루를 덮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며,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용이 호상(護喪)을 했던 일들이 그것이다. 3개월 뒤인 1376년(우왕 2년) 8월 15일에 절의 북쪽 언덕에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한 부도를 세우는 한편 대대적인 중창이 함께 이루어졌다.

 

1469년(예종 1년) 경기도 광주의 대모산(大母山)에 있던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이 여주로 이장된 후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願刹)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고, 1472년(성종 3년) 2월에 대규모 중창 불사가 시작되어 8개월 만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 또는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대왕대비는 신륵사를 보은사(報恩寺)라고 개칭하였다.

 

그 뒤 이 절은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전락했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병화로 폐허가 되었다. 1671년(현종 12년)에는 계헌(戒軒)이 중건하였고, 1700년(숙종 26년)에는 위학(偉學)과 그의 제자 우안(宇眼)·천심(天心) 등이 삼존상을 중수했으며, 이어서 1702년에도 중수하였다. 1726년(영조 2)에는 영순(英淳) 등이 동대에 있는 전탑을 중수했는데, 당시에 세웠던 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하여 조사당·명부전·심검당·적묵당·봉향각·칠성각·종각·구룡루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집으로 1797년(정조 21)에 시작하여 180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내부에는 보물 제1791호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驪州 神勒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을 봉안하였고,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신중탱화·감로탱화와 1908년에 조성한 지장탱화가 있으며, 1773년(영조 49)에 주조한 범종(梵鐘)이 있다. 그리고 극락보전 정문 위에는 ‘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나옹의 친필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이 현판은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절의 동쪽 강변 바위 위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경내의 서쪽 언덕에는 부도 2기가 있다. 삼층석탑은 나옹을 화장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이 있다. 나옹의 화장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6각의 정자가 있다.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인용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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