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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태조산 도리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6. 4. 08:43

2022년 5월 29일에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에 다녀왔다. 도리사는 경북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해평면 송곡리 403)에 있는 사찰로 신라 최초의 가람이며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의 하나이고,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애쓰신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께서 창건한 절이다.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도리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으나, 그동안 못 가본 적멸보궁을 답사하고자 자료조사를 하는 중에 알게 되었다.

 

도리사 일주문은 사찰에서부터 4.5km나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의아했으나, 일주문을 지나면 가로수가 울창한 길을 달리게 된다. 산중턱에 접어들면서 만나는 최초 주차장을 지나 길을 따라 계속 차를 몰고 올라가다 보니 절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가파른 길을 차를 몰고 올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최초 주차장에 차를 놓고 올라가기에는 절 위치가 너무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적멸보궁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영주 부석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비해 손색이 없다. 멀리 조산나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우측으로는 낙동강 줄기와 넓은 평야지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마침 절에 도착하니 막 사시예불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적멸보궁에 자리를 잡고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마치고 사리탑을 참배하였다. 사리탑을 돌아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사리탑을 돌면서 소원을 빌 수가 있었다. 사리탑을 바라보면서 우측에는 사자를 타고 계시는 문수보살상이 있고 좌측에는 코끼리를 타고 계시는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극락전에 가서 삼배를 올리고 모전탑, 삼성각 등 당우들을 들러 삼배를 올렸다. 전면 7칸, 측면 8칸의 태조선원을 앞에서 바라보면 무척 큰 선방인데 위에서 바라보면 ㄷ자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태조선원 옆에는 예전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던 부도형 세존사리탑이 있다. 지금은 새롭게 사리탑을 건립하고 적멸보궁을 지어 참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 땅에 왔다가 이 곳에서 머무셨던 아도화상의 동상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뒤돌아서면 도리사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극락전 옆으로 내려가는 아도화상 좌선대도 꼭 둘러보아야 할 명소이다.

 

도리사 홈페이지(http://www.dorisa.or.kr/)에 따르면,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왕대(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 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은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에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 1과가 1977년에 실시한 세존 사리탑 보수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과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태조선원(太祖禪院), 삼성각, 조사전, 요사채 등이 있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인 팔작지붕 건물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75년(고종 12) 용해(龍海)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부 앙서와 상부 익공 및 내부 운궁의 형상이 18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 양식과 유사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말기의 건축특징을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1645년(인조 23)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876년(고종 13)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을 봉안하고 있으며, 근래에 지장탱과 신중탱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으로 불상을 별도로 모시지 않고, 법당의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게 된다. 도리사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2년에 주지 법등(法燈) 스님이 사리 예배와 기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법당 안에서 바라보이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 1과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조성한 것이다.

 

태조선원(太祖禪院)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근래의 선지식인 전강영신(田岡永信) 큰스님을 비롯하여, 성철(性徹) 큰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太祖禪院」ㆍ「桃李寺」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삼성각은 산신, 독성, 칠성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1992년에 조성한 산신탱(山神幀), 독성탱(獨聖幀), 칠성탱(七星幀)이 봉안되어 있다. 설선당(說禪堂)은 1999년에 건립한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로, 1층은 보은전(報恩殿)이고 2층이 설선당이다. 범종각은 2005년에 건립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현재 사물 가운데 범종만 봉안되어 있다. 도리사 일주문은 사찰 지역에서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1993년에 건립되었다.

 

도리사 홈페이지(http://www.dorisa.or.kr/)에는 아도화상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어 있다. 아도의 어머니 고도녕은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져 아도를 낳게 되었다. 그 후,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고도녕은 아도를 출가시켰다. 아도가 16세가 되자 아도는 중국으로 가 현창화상 밑에서 수행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왔다. 어머니 고도녕은 아들을 불교가 없던 신라로 불법을 전하라며 보내었다. 당시 신라는 외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박해가 심했었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부 도개에 와서 모례장자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낮에는 일을 하여 도움을 주고 밤에는 사람을 모아 자비로운 불법을 전하였다.

 

그때,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장자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길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기가 이를 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하였다. 이에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 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공덕으로 불교를 전할 기회를 얻었으나, 왕이 세상을 뜨자 아도화상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이 공격을 해와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모례장자의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 하자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었으나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넝쿨을 따라 오시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모례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좌선대에서 아도화상이 정진하고 있었다. “ 잘 오셨오. 모례장자. 내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말을 시주하시오.” 아도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다. 모례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곡식 두 말을 망태기에 부었으나 어인 일인지 망태기는 두말은 커녕 두 섬을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모례장자는 재산을 모두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다.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의 이름을 따 도리사라 칭했고 그곳이 바로 신라에 처음 세워진 절 도리사이다. 아도화상은 도리사에서 정진하다 나이가 들어 금수굴에 들어가 열반에 들었다. 지금도 도리사에서는 성국 공주의 병을 낫게 한 아도화상 동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가족과 친지들의 쾌차를 위해 기원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가피를 받고 있다.(출처 : 도리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