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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팔공산 제2석굴암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6. 4. 08:47

2022년 5월 29일에 구미 도리사 답사를 마친 후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24(부계면 남산리 297)에 있는 팔공산 제2석굴암에 다녀왔다. 국보 제109호인 제2석굴암의 공식명칭은 군위아미타여래삼존불이다. 서기 700년 전후 남북조시대 통일신라에서 조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자연 석굴에 삼존불을 모신 곳으로 경주 석굴암과는 조금 다른 석굴암이다. 예전에는 석굴 바로 앞까지 올라가서 참배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계단을 폐쇄하여 올라갈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모전탑이 있는 곳에서 멀리 바라보며 삼배를 올리고, 옆에 있는 비로전에 들러 비로자나불을 참배하였다. 국보급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친견함으로써 불심을 키우도록 조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소개된 제2석굴암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석굴 높이는 4.25m, 본존상은 2.18m, 우협시보살상은 1.92m, 좌협시보살상은 1.8m이다. 거대한 자연 암벽을 뚫어 석굴을 만들었는데,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내부 평면은 방형(方形: 네모반듯한 모양)이며 천장은 궁륭형(穹窿形: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주위가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었다. 독립된 삼존석상을 석굴 내부 벽면에 붙여서 안치하였다.

 

별석(別石)의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본존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높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몸에 비해 큰 얼굴에는 삼국시대 불상에 보이던 친근감 있는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이 서린 모습이다. 체구는 어깨가 딱 벌어져 당당한 모습이며, 통견(通肩)의 법의는 얇아 몸의 굴곡을 드러낸다. 옷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묵직한 신체의 조형 감각을 강조해 준다. 하체는 법의의 주름으로 덮여 있는데, 법의의 자락은 대좌 아래로 늘어져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도상적(圖像的)으로 보면, 이 본존상은 오른손이 무릎 밑까지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왼손도 결가부좌한 무릎의 중앙에 오지 않는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불상의 최초의 예로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본존상의 뒤쪽 벽면에는 장식이 없는 두광과 신광을 새겼으며, 그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를 돌려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다. 좌우의 보살상은 동일한 양식을 보이는데, 삼면보관(三面寶冠)의 형식과 목걸이, 보주형(寶珠形)의 두광에서는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길쭉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한 쪽 다리에 힘을 뺀 초보적인 삼곡(三曲)자세 그리고 머리 광배의 화려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장식 등에는 새로 수용된 당나라 양식의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굴사원 대부분은 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그 위에 목조 전실(前室)을 세운 소규모의 석굴사원을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석굴은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군위아미타여래삼존불).

 

차량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찾아갔으나 큰길 좌측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쳐서 한참을 돌아 임도와 동내길을 지나고 나니 큰길 오른쪽 아래에 있는 제2석굴암 입구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양산서원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참배하였다. 운전자를 배려하여 주차장 안내판이 확실하게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시고 찾아 가시는 분이 계시면 큰길 좌측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치지 마시고 조금 걷더라도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가시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