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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안동 봉정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3. 5. 16. 22:34

2023년 5월 14일(일) 대전 한밭문화원의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태장리 901)에 있는 천등산 봉정사(鳳停寺)에 다녀왔다. 지난 2021년 10월 30일(토)에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고운사(孤雲寺)를 둘러본 후 다녀간 후 다시 찾게 되었다. 봉정사는 고운사의 말사이다. 언제 찾아와도 또 와보고 싶은 곳이다.

 

지금은 만세루가 수리 중이어서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 만세루를 지나는 길은 폐쇄되어 있었다. 만세루는 원래 덕휘루(德輝樓)이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고, 남북조시대인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축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는 극락전, 화엄강당, 대웅전 등이 있다. 봉정사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이다.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세계유산에 지정된 산사는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사찰이다. 고운사의 말사인 봉정사와 부석사를 제외한 5개 사찰은 모두 교구 본사들이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창건이라는 기록과 능인대덕의 창건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대체로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봉정사 홈페이지(http://www.bongjeongsa.org/)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대덕이 수도를 한 후 도력으로 종이 봉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때는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봉정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사의 역사에 대하여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이다.

 

2000년 2월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 과정에서 사찰 창건 연대를 확인해주는 상량문과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되었다.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중국 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라고 적힌 상량문은 경상도 관찰출척사가 직접 썼고 자사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이라는 사찰 건축연대를 밝혀주는 내용과 당시 봉정사의 사찰 규모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대웅전이 500여년 전에도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지정 21년 <1361년,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 시주하다. 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처음 확인되었다 한편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는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 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 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결(1만여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명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출처 : 봉정사 홈페이지)

 

수리중인 만세루 - 계단길에 잡초가 무성하다.
만세루 입구에 있는 회화나무
심플한 공포가 인상적이다. 다포식 건축양식의 초기 양식이다.
익공식 양식의 화엄강당 - 부리 모양의 초익공과 이익공
극락전
극락전에 계신 아미타부처님
주심포 맞배지붕 양식의 멋진 모습
삼성각 가는 길에서 바라본 극락전
사진을 사진으로 담다
설법당
공양간에서 점심을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