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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5. 1. 18. 14:27

2025년 1월 12일(일)에 대전광역시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5년 1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 번째 답사지로 인천 연수구 청량로 138(옥련동 525-11)에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다녀왔다.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에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6·25한국전쟁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작전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침한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간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1984년 9월 15일에 개관한 기념관으로 6·25한국전쟁 당시 구국의 계기가 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개관일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된 날짜이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기념관이다. 김수근 건축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본관, 부여박물관, 청주박물관, 88올림픽 주경기장과 체조경기장 등을 설계한 대한민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이다.
 
송도 로터리에서 청량산을 향해 직선으로 올라오는 4차선 도로 인권로가 끝나는 지점에 기념관 입구가 있다. 화강암 아치를 지나면 높은 성벽 사이로 난 계단이 자유수호의탑까지 직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수호의탑 뒤로는 청량산 봉우리가 배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직선으로 달려들어 오는 강이나 도로 등은 용상팔살(龍上八殺)이라 하여 흉살이지만, 상륙작전이라는 큰 기운이 밀려오는 느낌을 실감할 수 있다. 자유수호의탑까지 이어지는 좁은 계단 양쪽에는 상륙작전의 어려움을 상징하듯 높은 돌벽이 쌓여져 있다. 한편으로는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흉살을 막는 보호막 역할도 할 것 같다.
 
정문을 통해 계단을 올라가면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야외전시장을 만나고, 한 번 더 계단을 올라가면 영상실과 전시실이 있다. 중앙 계단을 다시 오르면 청량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는 자유수호의탑이 있다. 자유수호의탑 정면 하단에는 한국전쟁에 전투부대를 파병한 16개국과 의료지원국 6개국이 새겨져 있고, 탑 정면 우측에는 미해병대1사단협회에서 기증한 현판이 걸려 있다. 자유수호의탑에서 뒤돌아보면 바다와 어우러진 인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송도와 멀리 인천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 데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볼 수가 없었다.
 
자유수호의탑 아래에는 영상관과 전시관이 좌우에 있다. 영상관에서 인천상륙작전의 구상부터, 계획의 발전 과정, 인천상륙작전의 특징, 한국전쟁 당시 각 군의 역할을 소개하는 영상자료를 관람하였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친 후 문화관광해설사 3분의 안내로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쏘련, 중국, 북한 등 공산군과 서방의 유엔군이 싸운 전쟁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설사님의 의견에 공감이 갔다.
 
전시관 입구에는 우리를 도와준 국가들의 국기가 있는 조형물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계획 단계에서 작성된 맥아더 장군의 전선 시찰보고문, 인천상륙작전 계획서인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계획서 등을 볼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였던 맥아더 장군, 손원일 제독 등의 사진이 걸려 있는 회랑을 지나면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담은 디오라마와 영상실, 맥아더 장군 포토존 등 체험형 전시 위주로 구성된 전시공간을 관람하게 된다.
 
이곳에는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로 시작하는 학도병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인천투어 사이트의 소개 자료에 의하면, “전시관을 돌아보면 전쟁 중 어린 학도병이 어머니께 쓴 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쟁의 참담함을 고스란히 전하는 내용으로 관람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라는 내용이 있다.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야외 전시장에는 상륙돌격장갑차, 고사기관총, 함포, 호크 유도탄, 카고 트럭 등 전쟁 관련 대형 장비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영상관 앞쪽 끝에는 응봉산(지금의 자유공원) 기상대를 탈환한 후 환호하는 미 해병대 모습을 담은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전시관 앞쪽 한쪽 끝에는 해벽을 오르는 미 해병대 장병들의 모습을 조각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고, 인천상륙작전에서 길잡이 역할했던 팔미도 등대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높은 위쪽에는 6·25한국전쟁 당시 쌕쌕이로 알려져 있던 F-86D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당시 공산군의 MIG-15기를 격추하여 제공권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했던 전투기이다.
 
인천상륙작전이라 하면 까만 선스라스를 끼고 작전을 지휘하던 맥아더 장군을 연상하게 된다. 맥아더 장군은 1880년 1월생으로 1937년 12월에 군에서 예편하였다가, 1941년 7월에 현역으로 다시 소집되어 태평양 지역의 미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일본을 점령한 장군이다. 1950년에 주한 유엔군 사령관으로 발탁되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명장이시다. 6·25한국전쟁에 참전하실 때 나이가 70세였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맥아더 장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는 상륙작전을 구상하고, 수도 서울을 단 시일 내에 탈환하기 위해서는 인천에 상륙해야 한다는 작전을 진행한다. 맥아더 장군의 결단으로 미국의 합동참모본부는 1950년 8월 28일에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계획을 승인하였고, 9월 4일부터 9월 15일까지 상륙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한 공중폭격이 계속되었다. 9월 13일부터는 4척의 항공모함과 5척의 순양함, 6척의 구축함이 인천만 어구에 들어서 월미도 포격을 시작하였고, 9월 15일에 월미도에 상륙하게 된다.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9월 12일에 군산에 양동작전을 시행하였고, 9월 14일과 9월 15일에는 삼척 일대를 포격하기도 하였다. 인천상륙작전과 연계하여 잊지 말아야 할 작전은 1950년 9월 15일부터 9월 19일까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변에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에 맞추어 9월 15일부터 시작하는 유엔군의 낙동강 전선 돌파 공격을 위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목적과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이루어진 작전이다.
 
이 작전은 젊은 학생들로 구성된 학도병과 이들을 지휘하는 육군 장교로 구성된 총 772명의 독립 제1유격대대가 LST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이다. 철수 과정에서 문산호가 좌초되면서 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된 작전이다. 경북 영덕에 가시면 꼭 들러보시기를 추천한다.
 
자유수호의탑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있다. 허리가 완치되지 않아 걸음이 불편하여 가보지는 못했고, 발 빠른 분들이 다녀온 사진들을 보면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946년 4월에 개관하였다가 1950년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 시의 포격으로 소실되었다가 1953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1990년 5월 이곳 옥련동 신축 건물로 이관하였고, 2008년에는 검단선사박물관이 편입되었으며, 2012년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편입되었다. 검단선사박물관과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은 원래 있던 장소에 그대로 있다. 이곳에 있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는 인천광역시의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감 영상실에서는 '시간을 달리는 인천'이라는 주제로 2편의 몰입형 미디어아트와 2개의 실감체험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 자유수호의탑 앞에서 뒤돌아 본 송도
▲ 군사2급비밀(Secret)로 분류되었다가 1983년 1월 20일에 비밀이 해제된 크로마이트 작전계획서
▲ 장사리 상륙작전 등 다양한 양동작전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

 

 

▲ 중공군 복장
▲ 공산군의 따발총
▲ 우리군의 M1소총과 카빈소총 - 우리 군의 주력 소총이었다.
▲ 잊혀지고 있는 구호 "잊지말자, 625"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가는 길
▲ 정문을 나와 좌측으로 가면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상륙함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