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4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길 1(강남구 삼성동 131)에 있는 선릉과 정릉을 둘러보았다. 강남구 역삼동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선릉과 정릉을 둘러 보았다. 선릉(宣陵)은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과 세 번째 왕비이신 정현왕후의 능이고,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의 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사적지의 공식 명칭은 서울 선릉과 정릉(서울 宣陵과 靖陵)이다. 2호선과 분당수인선 선릉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국가유산청에서 발행한 리플렛에 따르면,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은 세조의 손자이자 세조의 장자인 의견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1461년에 잘산군(者乙山君)으로 봉해졌고, 1469년에 작은 아버지이신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재위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선비들을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38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 조선의 틀을 완성한 왕으로 보고 있다.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1462~1530)는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1473년(성종 4년)에 성종의 후궁이 되었고, 1479년(성종 10년)에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다음 해인 1480년(성종 11년)에 왕비가 되었다. 성종의 맏아들인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자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506년 중종반정 때 왕대비의 권한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친아들 중종의 즉위를 허락한 분이다.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더났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로 앞에서 봤을 때 서쪽 언덕이 성종의 능이고, 동쪽 언덕이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1462~1530)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떠나고 이듬해 만들어졌는데, 원래 이곳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묘역이었으나 성종의 능자리로 정해지면서 성종의 작은 할아버지인 광평대군의 묘는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선릉은 도심지에 자라잡고 있어서 무척 비좁다. 홍살문 바로 앞에 담장이 있고 능의 좌측도 바로 담장이다. 해방 이후 역대 정권, 특히 박정희 정권 때 능역의 많은 부분들이 민간에 팔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종의 묘는 임좌병향(壬坐丙向)이다. 광평대군의 묘를 쓴 후 후손들에게 불행한 일이 많아 상주인 연산군과 인수대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의정 윤필상(1427~1504)의 주장에 따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묘를 쓴 후부터 연산군에 의한 폭정 등이 문제가 되는 등 성종 사후에 안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며, 이 자리를 내주고 대모산 자락으로 이장한 광평대군의 후손들은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왕릉 영역이 줄어들어 비좁게 자리잡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 쓴 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선릉과 정릉 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의 능이다.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1494년에 진성대군으로 봉해졌고, 1506년 중종반정으로 이복형인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중종은 재위 기간 동안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치와 제도를 바로 잡았고, 서적을 간행하여 인쇄 기술을 발전시켰다.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중종이 세상을 떠난 후 현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능의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으나, 1562년(명종 17년)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뜻으로 장경왕후의 능(희릉)은 그대로 두고 중종의 능(정릉)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 본인이 사후에 중종과 같이 묻히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나, 정릉을 옮겨온 현재의 자리가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잦자 문정왕후는 서울 노원구에 있는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인 단경와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도 ᄄᆞ로 흩어지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선릉과 정릉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관)까지 불에 타는 수난을 당했다. 1593년(선조 26년) 두 능을 다시 수리하고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선릉은 그런대로 왕릉이 갖추고 있던 홍살문, 향로, 어로, 수라간, 수복방, 비각, 정자각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 입구에 재실도 있으나, 정릉에는 홍살문과 향로, 어로, 비각과 정자각만 있다. 능 바로 옆에는 고층빌딩이 들어서 있다.(인용문헌: 서울 선릉과 정릉 리플렛,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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