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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남해군 호구산 용문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5. 5. 14:44

2026년 4월 12일(일) 대전 한밭문회원 4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 번째 답사지로 경상남도 남해군 용문사길 166-11(이동면 용소리 868)에 있는 호구산 용문사(虎丘山 龍門寺)에 다녀왔다.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며, 남해군에서는 가장 큰 사찰이라고 한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호구산(650m) 일원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남해군에서는 군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남해군에서 지정한 남해 12경 중에서 11경이기도 한다. 경남 남해군을 여러번 갔었지만, 이런 큰 사찰이 있는지를 처음 알았다. 해수관음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보리암의 인기(?)에 밀린 듯하다.
 
이번 문화탐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45인승 대형버스 4대로 출발하였다. 일주문이 있는 주차장에서 내리면 지장대도량(地藏大道場)이라는 표지석을 만난다. 호구산 용문사는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의 가피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경기도 연천의 심원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 산내 암자인 도솔암 내원궁과 함께 전국 3대 지장기도도량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일주문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우측 언덕에 부도전이 있다. 잠시 들러 예를 표하고 부도전 주변에 심어져 있는 차나무에서 막 피어나는 새잎을 따서 먹어본다. 조금 더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세심교(洗心橋)를 만난다. 세심교 옆에는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패널과 포대화상을 만난다. 세심교 건너에는 천왕각이 있다. 다른 사찰과 다르게 천왕문이 아니고 천왕각(天王閣)으로 명명되어 있고, 사천왕들이 마귀를 밟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탐관오리를 밟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천왕각은 조선시대 숙종 28년(1702년)에 세운 전각이다. 용문사는 숙종 때 나라를 지키는 사찰이라는 뜻의 수국(守國) 사찰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은 사찰로서 수국사금패(守國寺禁牌)가 있고, 총신이 세 개인 삼혈포가 있다. 억불정책을 시행하던 조선시대에 탐관오리를 제압하고 있는 사천왕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수국 사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남해 용문사는 수국(守國) 사찰이라는 것과 경내에 많은 수국(水菊)을 심어 동음이의어인 수국으로 유명한 절이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것은 수국 꽃으로 유명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천왕각을 지나면 우측에 2층 누각인 봉서루(鳳棲樓)가 있다. 봉서루 밑에는 커다란 구유가 있다. 1,000명분의 밥을 퍼담을 수 있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고,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밥을 퍼 담아 쓰던 밥통이라고 한다. 통나무 몸통 둘레가 3m, 길이 6.7m나 되는 거대한 밥통이다. 봉서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적묵당이 있고, 우측에는 탐진당이 있다.
 
마침 봉서루 2층에서는 사시예불(巳時禮佛)을 드리고 계셨다. 오늘은 제사가 있어서 대웅전에서 시행하지 않고 봉서루에서 올린다고 한다. 부랴부랴 전각들을 둘러보고 돌아오니, 마침 스님께서 용문사에 관해 설명하고 계셨다. 대웅전은   360년 전에 만든 아쿠아리움이라고 소개하시면서, 대웅전 천장에는 거북이, 게, 물고기, 해초 등이 그려져 있으니 찾아보라고 말씀하신다. 바닷가에서는 극락이 용궁이고, 용궁으로 가는 길이 용문사라고 소개해 주셨다. 점심 공양을 용문사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서 스님 법문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나와야 해서 여간 죄송한 게 아니었다.
 


남해군 홈페이지와 용문사 홈페이지 등의 소개 자료를 보면,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 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남해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라 한 이후,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입니다.
 
다른 설화로는 조선시대 현종 원년(1660)에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맞닿아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문사 소개 자료를 보면 비교적 사찰의 중창 역사가 세밀하게 기록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월당 대사는 현종 원년(1660)에 스님들과 함께 먼저 선당양당(禪堂兩堂)을 지었고 승당은 신운(信雲)이 현종2년(1661)에 준공하였다. 현종 7년(1666)에 백월대사가 주재하고 일향(一香)화상이 화주가 되어 대웅전을 창건하였고 지해(智海)가 윤색(潤色)하였다. 성암이 봉서루를 창건하였고 태익이 낙성했다고 한다. 나한전은 보휘, 명부전은 설웅, 향적전은 인묵, 첨성각은 설잠, 천왕각은 유탁, 수각정은 각오가 낙성한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수많은 용 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석불, 조선 인조 때의 시인 촌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 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용문사의 산내 암자의 하나인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성철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은 조선시대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이 세우고, 영조 47년(1773)에 중창이 완료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종 대에는 이상저온현상으로 인한 소빙기로 불리던 시절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인데, 흉년이 잦았던 시기에 이런 건축물을 건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처마가 살짝 들려 있고 공포가 화려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형식이다.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초석 위에 팔각형 활주를 세워 구조적 안정을 꾀하고 있다.
 
공포 형식은 외3출목 내4출목이며, 공포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강하게 주며, 살미에는 장식성이 강한 연꽃, 연봉을 조각하였다. 대웅전 현판이 걸려 있는 중앙에는 커다란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 천장인 반자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거북, 게, 물고기, 해초 등을 조각하여 바닷가 건축물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데, 이러한 모습은 해남 대흥사 천불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의 빗반자에 나타난 물고기 장식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화재 예방을 위한 장식으로 보인다.
 


가람 배치는 봉서루와 대웅전을 중심으로 대웅전 우측에는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의 정면이 대웅전을 향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명부전에서는 동남아에서 오신 스님께서 예불을 올리고 계셨다. 명부전은 조선 현종 3년(1662)에 건립되었다. 전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지었지만, 대웅전 다음으로 중요한 건물이다. 민흘림 둥근 기둥은 머리로 갈수록 가늘게 깎고 새 부리 모양의 재료를 2단으로 짰으며, 건물 앞면에는 꽃살로 장식한 문짝을 달았다. 격에 어울리는 이러한 장식 덕분에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명부전 옆으로 가면 단칸 전각에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 석조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 용화전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용문사를 재건하는 공사를 하던 중에 경내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얼굴은 사각형으로 각진 얼굴에 눈은 가늘고 코는 크며 입은 작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주먹을 쥐고 있고, 왼손은 배 앞으로 빼서 정교하게 조각된 연꽃 봉오리를 들고 있다. 석조보살상이지만 현재는 두껍게 회칠을 하여 본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연꽃을 들고 있기 때문에 미륵보살상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한 명칭은 알 수 없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보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첨성각과 영산전이 있고, 영산전 옆으로는 내부에 조명을 화려하게 설치한 칠성각이 있다. 칠성각 중앙에는 칠성님들이 그려진 탱화가 있고, 좌우 측에는 호랑이와 함께 있는 산신과 스스로 혼자 깨우치셨다는 나반존자가 있다. 영산전 옆으로 돌 계단을 올라가면 지장삼존대불이 모셔져 있다. 범종각 뒤쪽으로는 연못이 있고 연못 옆에는 돌로 조각한 시왕 중의 한 분이 계시고 옆에는 문수동자상이 있다. 연못가에는 송악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있는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님 말씀대로 용문사에는 많은 용이 있는 셈이다.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쪽에 있는 선열당 건물 옆에는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 지장보살상이 있다.
 
한밭문화원 문화탐방을 통해 남해군에 이런 큰 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람이 있는 답사였다. 4대의 대형버스로 이동하면서 많은 탐방객들을 안내하고 점심 식사할 곳을 섭외하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한밭문화원 관계자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송악
▲세심교
▲탐관오리를 밟고 있는 사천왕
▲봉서루
▲대웅전 -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
▲꽃장식이 되어 있는 살미
▲외3출목
▲내4출목
▲게도 보이고 물고기도 보이고
▲법고의 무늬가 예사롭지 않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봉서루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심경) 병풍
▲명부전

 

 

▲영산전
▲칠성각
▲용 오르듯 뻗어가는 송악

 

▲흰꽃나도사프란
▲지장보살
▲ 의자를 닮은 바위 - 한여름에는 제일 좋은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