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2일(일) 대전 한밭문회원 4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두번째 답사지로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상주면 상주리 2065)에 있는 금산 보리암에 다녀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며,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홍련암, 인천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해수관음성지는 관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이곳에서 기도 발원을 하면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알려진 명소를 말한다.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하고 수도하시던 절로 알려져 있다.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을 보광산으로 불렀으나,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여 왕위에 오른 일을 감안하여 이씨 왕조의 원당으로 또한 호국기원도량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는 본인이 왕위에 오르면 이 산을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고 발원하며 기도하였고, 실제로 왕위에 오른 후 비단으로 덮는 대신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꾸었다. 태조 이성계의 원대한 포부와 기개가 놀랍고, 금산으로 이름을 바꾼 기지가 놀랍다. 금산은 원효대사 때부터 관세음보살이 상주하시는 곳으로 알려진 영험한 산이며,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들은 무언가 많은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 주고 있다.

보리암을 품고 있는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보리암에 오르는 길은 남쪽 상주해수욕장에서 걸어서 올라오는 방법이 있고, 북쪽 임도를 따라 올라오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대형버스 4대로 이동하여 복곡저수지 근처의 복곡주차장에서 내린 후 복곡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산중턱 주차장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마을버스 요금은 왕복 3,400원인데 한밭문화원에서 지불해 주셨다. 왕복 버스표이므로 내려올 때까지 잘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려오는 차를 탈 때 회수한다.
마을버스가 꾸불꾸불한 임도를 따라 올라가서 보리암 2주차장에서 내려준다. 승용차는 이 주차장까지 올라올 수 있으나, 안전을 위해서도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할 것 같다. 보리암 2주차장에서 내리면 한려해상국립공원 복곡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임도를 따라 걷게 된다. 이곳에서 입장료 1,000원을 받는데 탐방객들은 한밭문화원에서 미리 조치하여 주셔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보리암으로 올라가다 보면 산꼭대기에 있는 기이한 바위들을 보게 되고, 왼쪽으로는 남해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주변에는 엘레지, 고깔제비꽃 등 야생화들이 있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능선을 넘어 보리암으로 내려가면 금산의 산세를 보고 놀라게 된다. 뒤쪽으로 올라올 때는 산꼭대기에만 바위가 있었으나, 남쪽 기슭으로는 암자가 있는 곳까지 바위들이 웅장하게 내려와 있다. 보리암 홈페이지에 따르면, 금산의 바위는 장엄한 기운이 뭉쳐 의젓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용을 타고 전후좌우 절을 하는 남순동자 바위와 관음조가 읊조리는 듯한 바위들을 거느리고 남쪽 바다 용왕에 무슨 가르침을 내리는 듯하다. 보리암은 이런 바위들을 등지고 놓여 있으며, 금산(錦山)의 한복판에 관음봉을 기대고 위치한 유서 깊은 절이다.
보리암은 고대로부터 유래가 깊다. 가락국 김수로왕도 이곳에서 기도하고 대업을 이루었다고 하며, 왕의 일곱 왕자도 외숙인 장유국사(長有國師) 옥보선인(玉寶仙人)을 따라 출가하여 남해 낙가산 금산(錦山) 보리암에서 수도하다가 다시 가야산을 거쳐 지리산 반야봉에서 수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증명하는 것으로 북방전래설(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보다 292년 앞섰다.(출처: 보리암 홈페이지).

국가유산포털에서 소개하고 있는 금산은 다도해에서 유일한 큰 체적의 화강암 산임에도 불구하고 토산(土山) 성격이 강해 남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마치 오색 자수판을 보는 듯하며 대규모의 낙엽수림이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갔다는 서불의 이야기가 담긴 ‘서불과 차암’과 춘·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老人星 또는 壽星,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스런 전설이 많은 곳이며,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인 보리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출처: 국가유산포털 – 금산).

보리암은 바위 밑에 있는 좁은 장소에 위치해 있지만, 대웅전 역할을 하는 보광전(普光殿)이 있고, 보리암에서 가장 규모가 큰 극락전(極樂殿), 산신각 등이 있고, 고려시대 탑인 보리암전 삼층석탑(菩提庵前 三層石塔)과 보리암을 상징하는 해수관세음보살상(海水觀世音菩薩像)이 있다. 삼층석탑과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있는 곳은 보리암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나경을 가지고 가보면 나침반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곳이다. 아마도 아래쪽 바위에 자성을 띤 철분이 많은 것 같다.
해수관세음보살상은 1991년 한 기업가의 원력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 지형적 영향으로 육로로 운반할 수 없었던 해수관세음보살상은 헬기를 이용하여 탑대에 안치했다고 한다. 좌대는 연꽃 문양으로 하좌대와 상좌대로 이루어져 서로 마주 보게 포개져 있다.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에 두었다. 한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고 가는 이 해수관세음보살상은 보리암의 제1명소로 알려져 있다.(출처: 보리암 홈페이지).

헤수관세음보살상 옆에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보리암전 삼층석탑이 있다. 높이 1.8m, 폭 1.2m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탑이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 오지를 못 하던 중에 파사석을 싣고 무사히 건너왔다고 한다. 이 탑은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다른 전설로는 신라의 원효대사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원래 김해시 구지봉 산 아래에 있는 호계사에 봉안되어 있던 것을 원효대사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그러나 두꺼운 지붕돌과 3단으로 된 지붕돌 밑면 받침 등을 보아,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보리암 주 당우로는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 보광전(普光殿)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최초로 세운 후 여러번의 중건 중수를 거쳤으며, 현 보광전은 1968년에 중건하고, 2000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서천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왕) 삼존상(三尊像)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불감은 2015년 1월 15일에 경남 유형문화재 제 575호로 지정되었다.(출처: 보리암 홈페이지).

보리암에서 가장 규모가 큰 극락전(極樂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아미타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1996년부터 원불을 조성하여 2000년에 완성하였다. 많은 원불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만불전(萬佛殿)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산령각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산신각(山神閣)이 있고, 지금 종무소로 이용하고 있는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노인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이 별은 12월 하순과 1월 사이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석굴 내부에 작은 석불을 모시고 있는 굴법당을 조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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