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코리아 둘레길/남파랑길

남파랑길 29코스(남망산조각공원 입구 - 무전동 해변공원)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6. 15. 13:44

□ 트레킹 개요
   o 남파랑길: 3구간(고성&통영 구간) 29코스(남망산조각공원 입구 - 무전동 해변공원)
   o 일 자: 2026년 6월 13일(토)
   o 교통편:
      - 갈 때: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통영행 시외버스(07:30분발/통영 도착 10:10분) -> 통영 종합버스터미널에서 101번 시내버스(10:15분 출발) -> 중앙시장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변가로 걸어 내려가서 남망산조각공원 입구 도착(10:56)
      - 올 때: 통영 무전동 해변공원에서 한진로즈힐 버스정류장에서 시외버스 터미널행 시내버스 승차(대부분의 노선)(18:15) -> 통영종합버스터미널 하차(18:26)
   o 코스 개요
      - 남망산조각공원 입구 ↔3.0km↔서피랑↔3.0km↔통영대교↔6.0km↔평림항↔6.0km↔무전동 해변공원
      - 두루누비 기록: 22.7km(삼도수군통제영, 통영시립박물관, 해저터널, 통영 착량묘 둘러보기 포함)
   o 코스 요약
      -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 사거리/시점(10:56) -> 동피랑 입구(10:59) -> 동포루(11:10) -> 삼도수군통제영(11:32~12:37) -> 여황로(12:41) -> 박경리 생가(12:47) -> 서포루(13:08) -> 서피랑 99계단(13:17) -> 통영적십자병원(13:22) -> 통영시립박물관(13:31~13:58) -> 음표정원/음표정원 조금 지나 골목으로 우회전(14:00) -> 윤이상 기념공원(14:07) -> 해저터널(14:22~14:35) -> 착량묘(14:40) -> 충무교 아래(14:50) -> 통영대교 아래(14:57) -> 경상국립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정문(15:07) -> 국치마을 버스정류장(15:20) -> 민양경로당(15:53)/골목길로 우회전 -> 사리포 바다노을 전망대(16:05) -> 남파랑쉼터/해양소년단 거북선 캠프(16:29) -> 평림항(16:37) -> 우포마을 버스정류장(16:39) -> 통영체육관(17:15~17:36) -> 소포마을(17:53) -> 통영수영장(18:00) ->  무전동 해변공원/종점(18:09)  
 
   ※ 스탬프 QR 찍는 곳
      - 시점: 경상남도 통영시 동호동 171-2(통영현대교회 옆)
      - 종점: 경상남도 통영시 무전동 1053 (무전해변공원 주차장 부근)

□ 트레킹 후기
2026년 6월 13일(토)에 허리 고장으로 작년에 걷지 못한 남파랑길 3구간(고성&통영  구간) 29코스를 완주하였다. 29코스는 통영에서는 번화가인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평림항을 돌아 통영시의 또 다른 번화가인 무전동 해변공원까지 걷는 코스이다. 출발점에 있는 통영 출신 김춘수 시인의 시비를 구경하고, 동피랑 벽화마을, 삼도수군통제영, 박경리 생가, 서피랑 공원, 통영시립박물관, 윤이상 기념공원, 해저터널, 통영 착량묘, 통영대교 등 둘러볼 거리가 많은 코스이다. 나홀로 여행이라 여유있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천천히 걸으며 즐길 수 있는 평인일주로에서는 시간에 쫏겨 잰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통영 종합버스터미널에서 18시 55분에 출발하는 대전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걸었다. 남파랑쉼터에서도 잠깐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해야 했다.
 


2026년 6월 14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을 따라 경남 하동군의 최참판댁으로 문화탐방을 떠나게 되어 있어서, 가기 전에 통영에 있는 박경리 선생 생가도 볼겸해서 출발하였다. 아뿔사! 아침에 출발하려고 보니 어제 밤에 휴대폰 충전을 잊어 배터리가 15% 남아 있는 휴대폰을 들고 출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시외버스에서 충전해야 하는데, 그동안 잘 가지고 다니던 USB 케이블을 빼놓고 왔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USB 충전 케이블을 만원을 주고 샀는데, 1.5m 길이의 중국산이라 그런지 충전이 안된다. 아마도 케이블의 도선 저항이 커서 그런 것 같았다.

보조배터리를 이용하여 아껴가며 걸었지만, 결국 통영체육관에서는 휴대폰이 꺼지고 말았다. 통영체육관 로비에서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하며 20여분 정도 충전을 시킨 후 다시 출발하였다. 다행히 통영체육관에서는 생활체육 배구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로비가  개방되어 있었다. 두루누비와 램블러는 끊어지지 않고 따라가기를 계속해주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치는 날이라 걷는데도 무척 조심하면서  걸었다.

 

▲강구안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


시내버스가 중앙시장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주었는데, 지난번에 시내버스를 탔던 해변가의 중앙시장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잠시 멘붕 상태를 겪어야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지도를 보니, 해변  반대쪽 중앙시장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물어물어 조금 걸어가니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강구안 해변이었다. 통영 시내 지리를 몰라 어리둥절했던 추억이다. 덕분에 강구안 해변에 있는 2층누각도 구경하고,  2005년에 한강시민공원에서 이곳 강구안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거북선도 구경한 후에 남망산조각공원 입구로 갔다. 남파랑길 29코스 안내판 옆에 있는 김춘수 시인의 시비에서 그의 유명한 시 "꽃"을 읊어보고  출발 준비를 한다. 배터리가 조금 염려되었지만, 두루누비와 램블러를 켜고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했다.
 


지난 2017년에 동피랑 벽화마을을 둘러 본 후  9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피랑은 벼랑, 절벽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동피랑이란 동쪽에 있는 가파른 언덕이란 뜻이 된다. 통영시 중앙동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은 재개발계획 대신에 산비탈 마을에 벽화를 그려 유명해진 곳이다. 벽화들이 많이 달라져 있고, 작품을 그린 분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남파랑길만 따라서 올라가니 동포루가 가림막으로 가려져있다. 동포루는 이순신 장군이 통제영 동쪽에 설치한 포루이다. 기둥 보수작업중이라고 한다. 동포루를 구경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린 벽화들이 길옆에 설치되어 있는 뒷길을 따라 통영시 동문로로 올라간다. 동피랑 벽화마을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별도로 포스팅한다.
 


큰길을 따라 통제영을 찾아간다. 2층 누각인 망일루(望日樓) 앞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받아 망일루 밑으로 들어간다. 망일루 옆에는 수항루(受降樓)가 있고, 세병관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산성중군의 근무처인 산성청이,우측에는 좌청이 있다. 정면에는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솟을삼문인 지과문(止戈門)이 있다. 지과문은 창을 거둔다는 뜻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줄여서 통제영이라고도 부른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던 본진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초대 통제사이며, 이순신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통제영 옆의 12공방


통영에 올 때마다 세병관(洗兵館) 위주로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았으나, 오늘은 주변의 관아 건물들과 12공방터 등을 둘러 보았다. 1910년 일제에 강점된 후 세병관을 제외한 관아 건물 100 여동을 모두 헐고 관공서를 세웠던 일본인들의 잔혹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중심 건물인 세병관은 앞면 9칸, 옆면 5칸의 9량 구조의 웅장한 단층 목조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1605년(선조 38년)에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세운 건물이다. 전남 여수의 진남관과 같이 통제영의 객사 건물이다.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이 있다. 전면 7칸, 옆면 5칸의 여수 진남관에 비해 그래도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객사로 쓰인 방의 문들이 걸려 있었다. 洗兵館(세병관)이라고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라고 한다.  통제영 후기는 이 블로그에  별도로 포스팅하였다.
 


 세병관을 둘러보고 최근에 복원된 관아 건물들과 각종 군수품과 진상품들을 만들던 12공방 건물들을 둘러보고 망일루로 나온다. 남파랑길은 망일루를 바라보고 좌측의 통제영 담장길을 따라가면 여황로를 만난다. 여황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사거리에서 좌측 건널목으로 건넌 후 몇 발자국 더 좌측으로 가면 《토지》와 《김 약국의 딸》 등을 지은 박경리 선생 생가가 있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예전에는 남파랑길이 충렬사 앞을 지나도록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박경리 선생 생가를 지나도록 변경된 것 같다. 박경리 선생 생가는 충렬1길 76-38(문화동 328-1)에 있는 벽돌집이다. 지금도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다. 골목을 지나 우측으로 가면 서포루가 보인다. 박경리 선생의 어록인 듯한 글들이 써 있는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서포루가 있는 언덕에 올라 멋진 통영 앞바다를 구경한 후,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서피랑 99계단을 내려가면 시내로 들어간다. 적십자병원을 우측으로 끼고 돌아 큰길을 따라 걸으면 통영시립박물관에 닿는다.

▲옛 통영군청 건물에 있는 통영시립박물관


통영시립박물관 건물은 1943년에 건축되어 통영군청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1월 1일부터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통영시가 설치되면서 신청사로 이전한 후 통영시청 별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002년부터 윤이상 페스티벌하우스로 용도 변경하면서 전면 개보수 되었다가, 2013년부터 통영시립빅물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통영 안정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2층 상설 전시실에는 통영의 역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잠수병을 앓았던 신석기시대 인골이 전시되어 있다. 통영시립박물관 관람 후기는 이 블로그에 별도로 포스팅하였다.

통영시립박물관을 지나면 음표정원을 만난다. 음표정원을 지나 몇 걸음 걸은 후 우회전하여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든다. 벽에 걸려있는 꽃 화분들이 음표처럼 보이고,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에 조성된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안내한다.  골목에 설치되어 있는 아기자기한 꽃들은 윤이상 선생과 교유했던 통영 출신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이미지화한 것 같기도 하다. 골목에서 윤이상 선생이 연주하셨던 첼로 형상을 만날 때쯤에 윤이상 기념공원을 만난다. 윤이상 작곡가는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서 태어나, 1920년 통영군으로 이주한 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 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윤이상 기념공원


윤이상 작곡가는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쓰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서울로 납치되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옥고를 치른 바 있다. 당시 하인리히 뤼프케 서독 대통령이 "이 야만적인 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한국 대사를 추방하고, 1964년 12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약속했던 차관 제공도 취소하겠다"고 하는 등 서독 정부의 노력으로 석방되었다. 1970년 815특사로 잔형이 면제되어 독일로 돌아간 후 1971년 독일로 국적을 바꾸었다. 24년 후인 1995년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다시 23년이 지난 2018년에야 비로소 그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적십자병원에서부터 중앙로 보도에는 통영초등학교, 통영고등학교, 통영 여중고, 고려대학교 등의 교가 동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교가들의 작곡가가 바로  윤이상 작곡가이시다.  윤이상 생가터라는 표지석이 있지만 태어난 곳이라기 보다는 유년기를 보낸 곳에 기념관과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윤이상 기념공원을 지나면 미륵도로 들어가는해저터널을 만난다. 이 터널은 1932년 건립된 터널로,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이다. 입구에 새겨져 있는 龍門達陽(용문달양)이라는 글씨는 일제강점기에 터널 건설을 주도했던 일본인 통영 군수 야마구찌의 글씨라고 한다. 아픈 상처지만 지우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는 통영시에 박수를 보낸다. 남파랑길은 아니지만 터널 중간까지 걸어갔다가 돌아나왔다. 입구에는 터널을 만들 때 사용했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1/4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통영 해저터널


해저터널을 구경하고 나오면 통영 착량묘(統營 鑿梁廟)가 있다. 착량묘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신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쫓겨 달아나다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 좁게 이어진 협곡에 이르러 돌을 파서 다리를 만들며 도망한데서 붙인 이름이다. 착량묘를 참배하고 해변으로 내려와 충무교와 통영대교 밑을 지난다. 멋진 다리 모양을 사진으로 담고 시원하게 달리는 낚시배 등을 구경하며 걷는다. 국립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을 지나 고개를 넘는다. 비파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한알을 슬며시 따서 먹어보니 달고 맛있다. 과즙은 별로 없고 두개의 커다란 씨가 남는다.
 

▲통영대교


인평어촌계회관을 지나면 우회전하여 동네 골목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잘 살펴야 한다. 동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1021번 도로인 평인일주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잘 포장되어 있고 차량도 별로 안다니는 호젓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평인일주로를 만나자마자 사리포 바다노을 전망대에서 바다를 구경하고, 30분 정도 걸으면 해양소년단 거북선 캠프장 입구쪽에 있는 남파랑쉼터를 만난다. 쉼터에 들러 근무자와 인사를 나누고 물도 보충하고 방명록에 서명도 하고 다시 출발한다.
 

▲저멀리 무전동이 보인다.


우포마을과 소포마을을 지나 29코스 종점인 무전동 해변공원에 도착한다. 이곳 종점에는 친절하게도 29코스 안내판과 30코스 안내판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QR 코드는 두 안내판 사이 기둥에 설치되어 있다. 평인일주로는 아름다운길이다. 차도와 분리된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예쁜 수국도 많이 심어져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앞으로 가로수 등이 자라고 잘 정비된다면 "한국의 아름다운길" 후보로 경쟁력을 갖게 될 것 같다. 힘들었지만 구경거리가 많았고, 통영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 있었던 29코스를 완주하고 나니 뿌듯하다.
 
 

▲중앙시장 앞의 강구안에 있는 2층누각
▲통영 출신 김춘수 시인의 시비
▲중앙시장쪽 동피랑 벽화마을 입구
▲가리비 의자
▲보수공사중인 동포루

 

▲동문로 쪽 벽화마을 입구
▲산도수군통제영 입구
▲망일루 왼쪽에 있는 삼도대중군위문(요즘 군 편제로 보면 본부 부대 정문)
▲삼도수군통제여 정문인 망일루(望日樓)
▲망일루 옆 죄청 앞에 있는 수항루(受降樓) - 항복을 받는 문
▲세병관 정문인 지과문(止戈門) - 창을 거둔다는 뜻의 문
▲좌청 건물
▲수항루 뒷 모습
▲망일루 옆 모습
▲통제사를 14명이나 배출한 전의이씨(全義李氏) 문중의 비로 매볼되어 있던 것을 2014년에 발굴하여 전시하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洗兵館)

 

▲복원해 놓은 관아 건물
▲망일루를 바라보고 좌측 담장을 따라 가는 남파랑길
▲여황로
▲박경리 생가로 들어가는골목길
▲서희와 최참판댁으로 유명한 토지와 김약국의딸 등 많은 장편소설을 쓰신 박경리 선생 생가
▲서피랑공원 주차장

 

▲99계단을 내려와 시내 골목을 지나 만나는 통영적십자병원
▲중앙로 건너편에 서호시장 입구가 보인다.
▲옛 통영군천 건물에 들어선 통영시립박물관
▲2층 상설전시장 입구
▲잠수병을 앓은 신석기시대 인골
▲음표정원
▲음표정원 지나 우회전하여 골목길로 접어든다.
▲윤이상 기념관

 

▲윤이상 작곡가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셨다. 이곳은 3살 이후에 유년기를 보내신 집터
▲윤이상 작곡가가 유년기를 보낸 집터에 세워진 윤이상 기념공원
▲통영 해저터널 입구
▲용문달양(龍門達陽) 글씨는 일제강점기에 터널 건설을 주도한 일본인 통영군수 야마구찌의 글씨

 

▲해저터널의 1/4 크기의 모형
▲해저터널 입구의 치자나무꽃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착량묘 입구에 본 해저터널 지붕
▲충무대교
▲통영대교

 

▲노랗게 익어가는 비파나무 열매
▲민양경로당을 지나 골목길로 우회전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평인일주로를 따라 걷는다.
▲남파랑쉼터가 있는 해양소년단 거북선 캠프
▲평림항
▲통영체육관
▲무전동 해변공원
▲29코스 안내판과 30코스 안내판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