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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을 둘러보다.

아진돌 2026. 6. 24. 18:02

2026년 6월 13일(토)에 남파랑길 3구간(고성&통영 구간) 29코스를 걸으며, 경남 통영시 세병로 27(문화동 392-2)에 있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統營 三道水軍統制營)에 다녀왔다. 통영에 올 때마다 세병관(洗兵館) 위주로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보았으나, 오늘은 주변의 관아 건물들과 12공방터 등을 둘러보았다. 1910년 일제에 강점된 후 세병관을 제외한 관아 건물 100 여동을 모두 헐고 관공서를 세웠던 일본인들의 잔혹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시 건물 중에 남아있는 것은 세병관 뿐이나, 최근 관공서와 주택이 있던 통제영터를 일부 정비 복원하였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洗兵館)

 

국가문화유산 포털의 설명 자료를 보면, 통제영이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3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통제영이라고도 부른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지금의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李慶濬) 통제사가 두룡포였던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중영청의 외삼문인 삼도대중군아문

 

주차장이 있는 삼도수군통제영 입구부터 통제영의 정문으로 외삼문인 망일루까지는 커다란 깃발들이 방문객을 환영하듯 세워져 있다. 망일루를 못 가서 왼쪽에는 삼도대중군아문(三道大中軍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솟을삼문이 있다. 이 대문은 우후영(虞候營)의 외삼문이다. 우후(虞候)는 통제사 바로 아래의 정3품 직책으로 통제사의 참모장으로서 중군(中軍)으로 불렸다. 우후의 직무와 거주 공간이 우후영이며 중영이라고도 불린다. 통제영의 직할대 역할을 수행하며, 선창에 있는 군선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외삼문은 닫혀 있고 중영청은 세병관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둘러볼 수 있다.

 

다시 통제영으로 올라가는 길을 오르면, 망일루(望日樓)와 수항루(受降樓)를 만난다. 망일루는 해를 조망하는 누각(2층 건물이라는 뜻)인데 해는 임금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보면 통영의 해상 관문인 강구안과 동쪽 동포루가 있는 동피랑, 서포루가 있는 서피랑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항루는 원래 통영성 남문 밖 해변가에 있던 것을 1986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왜군으로부터 항복을 받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수항루 앞의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교부받아 망일루를 통해 들어간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정문인 망일루(望日樓)

 

망일루 밑으로 들어가면 좌측에는 산성청(山城廳)이 있고, 우측에는 좌청(左廳)이 있다. 산성청은 통영성(統營城)을 지키는 산성중군이 근무했던 곳이다. 우측의 좌청은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건물이다. 망일루와 같은 방향에는 지과문(止戈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통제영의 내삼문인 솟을삼문이 있다. 지과문은 그칠 止, 창 戈, 문 門으로 창을 거둔다는 뜻으로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좌청 앞을 지나면 비석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다. 14명의 삼도수군통제사를 배출한 전의 이씨(全義 李氏) 문중의 비석 9기를 모아놓은 곳이다.

 

바로 옆에는 통영 두룡포 기사비(統營 頭龍浦 記事碑)가 있는 비각이 있다. 이 비는 제6대와 9대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통제영을 이곳 통영으로 이전한 이경준 통제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제19대와 25대 수군통제사를 지낸 구인후(具仁垕)가 조선 인조 3년(1625)에 세운 것이다. 통영의 옛 지명인 두룡포는 원래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옴으로써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원래 통제영의 남문 밖에 세웠던 것인데, 1904년에 세병관 경내로 옮겨졌다. 이 비석은 몸돌과 머리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머리 돌에는 하나의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오르는 두 마리의 용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세병관 동쪽에는 통제사들의 공덕비를 모아놓은 비림(碑林)이 있고, 비석들이 있는 곳 아래쪽에는 운주당과 경무당, 내아 건물 등이 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인 세병관은 앞면 9칸, 옆면 5칸의 9량 구조의 웅장한 단층 목조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1605년(선조 38년)에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세운 건물이다. 전남 여수의 진남관과 같이 통제영의 객사 건물이다. 다른 객사 건물과 같이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공간이 있다. 전면 7칸, 옆면 5칸의 여수 진남관에 비해 그래도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 객사로 쓰인 방의 문들이 걸려 있었다. 洗兵館이라고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의미인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이름으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누리길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썼다.

 

세병관 마당에는 액막이로 만든 못난이 석인(石人) 5기가 있고, 세병관 앞뜰에는 통제영 깃발인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한 깃대를 고정하는 커다란 두 개의 돌기둥이 있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간지주와 같은 돌기둥이다. 세병관을 둘러보고 최근에 복원된 관아 건물들과 각종 군수품과 진상품들을 만들던 12공방 건물들을 둘러본다.

 

▲중국 사신 등을 접견하던 백화당

 

세병관을 바라보고 왼쪽 뒤로 내려가면 ㄷ형의 백화당(百和堂)이 있다. 세병관을 세울 때 같이 건립한 곳으로 중국 사신 등 손님을 접견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裨將廳)이라고 한다. 비장은 지방장관이나 중국 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 역할도 맡았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보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백화당 서쪽에는 12공방을 관리하는 공감의 집무실인 공내헌(工內軒)이 있다. 전면 5칸 측면 2칸의 제법 큰 건물이다. 12공방 입구에는 물을 저장하던 석수조가 있다.

 

12공방에는 활과 호살을 함께 꽂아 넣어 등에 지는 가죽 주머니인 동개와 활을 처리에 꽂는 궁대(弓袋)를 만들던 동개방(筒箇房), 가죽을 사용하여 군화와 말안장을 만들던 화자방(靴子房),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등을 만들던 총방(驄房)과 삿갓, 패랭이 등을 만들던 입자방(笠子房)이 한 건물에 있다. 총방에는 유명한 통영갓이 전시되어 있다. 대나무나 버들가지로 각종 보관함 상자를 만들던 상자방(箱子房)이 있다.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을 지키던 잉번청(仍番廳)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던 패부방(貝付房)과 옻칠을 담당했던 칠방(漆房), 각종 지도와 군사적 목적의 의자용 장식화를 그렸던 회원방(畵員房), 나무로 가구니 문방구 등을 만들던 소목방(小木房), 금과 은을 세공하던 은방(銀房)과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들던 석방(錫房), 쇠를 녹여 화살촉, 칼 등 병기와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야장방(冶匠房)이 있다. 19세기 초기에는 연마장과 도자장(刀子匠)으로 구성된 연마방이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12공방 지역에는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했던 ㄷ자형 잉번청(仍番廳)이 있다.

 

세병관 서쪽 아래쪽에는 삼도대중군아문(三道大中軍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외삼문 안에는 우후(虞候)의 군영으로 전면 5칸, 측면 3칸의 중영청(中營廳)이 있다. 중영청 주변에는 중영의 영빈관으로 쓰였던 응수헌(應酬軒)이 있고, 우후가 생활했던 숙소인 결승당(決勝堂)이 있다. 중영청 뒤편에서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에는 통영성과 항구가 그려진 통영의 고지도가 있고, 통제영 창건 당시 심었다는 느티나무 거목이 통제영의 역사를 간직한 채 서 있다.

 

▲중영청 외삼문인 삼도대중군아문 - 바로 뒤에 중영청이 있다.
▲ 삼도대중군아문에서 바라본 앞 동네
▲삼도수군통제영 정문인 망일루(望日樓)
▲망일루 옆모습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 현판은 지과문(止戈門)이다.
▲망일루로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산성청
▲산성청의 전시물
▲망일루로 들어가서 우측에 있는 좌청
▲좌청에 있는 전시물
▲좌청 앞에 있는 수항루(受降樓) 뒤 모습
▲매표소에서 바라본 수항루 정면
▲두룡포기사비 - 통영의 옛지명인 두룡포로 통제영을 이전한 이경준 통제사 공덕비
▲전의 이씨 통제사들의 비석
▲통제사 비군
▲세병관 동쪽에 있는 운주당, 내아 등이 있는 곳
▲세병관 뜰에 있는 석인(石人)
▲객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중영청
▲우후가 생활했던 숙소인 결승당(決勝堂)
▲중영의 영빈관인 응수헌(應酬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