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찬(2012). 『주역학 개론』. 경기도 파주: 한국학술정보(주). 초판 발행 2012. 9. 28.
2016년 12월 17일에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신 권일찬 박사의 『주역학 개론』을 읽었다. 기말시험을 준비한다고 밀어 놓았던 책을 기말시험을 마치고 다시 읽기 시작하여 완독하였다. 권일찬 박사는 행정학 박사이면서 동양학과 주역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내놓으신 분이다. 나도 『동양과학 개론』, 『동양학 원론』등을 구입해 놓은 상태에서 주역을 새로 공부하기 시작하였기에 『주역학 개론』을 먼저 읽기 시작하였다.
나는 2013년에 풍수학에 대한 글을 하나 쓰면서 정신과학학회지에 실렸던 ‘동양과학론’이라는 논문[권일찬(2004). 동양과학론(東洋科學論). 한국정신과학회지, 8(11), 1-26. 한국정신과학회]을 통해 권일찬 박사의 동양학에 관한 식견을 접하게 되었다. 미아리 철학관과 하버드 대학을 동양학과 서양학을 가르치는 양대 교육기관으로 칭하시는 분이다. 동양과학의 기초과학에 해당되는 주역은 물론이고 응용과학 분야의 동양오술(東洋五術)인 명(命)∙복(卜)∙상(相)∙의(醫)∙산(山)을 두루 섭렵하신 분이다. 동양학과 서양과학을 비교 고찰하면서 동양학의 기초과학 이론적 배경으로 우주의 실체적 개념을 기∙신∙기(氣∙神∙器)의 개념으로 제시하였다[권일찬(2010). 동양학과 서양과학의 비교 고찰. 사회과학연구, 27(2), 37-48. 충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저자는 대산 김석진 선생님으로부터 주역을 공부하신 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역과 주역에서 비롯된 역학과 역술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p.16)고 언급하셨다. 이 책은 주역의 의리역과 상수역 모두를 종합하여 서양과학기술과 상호 연관하여 고찰하고자 함을 연구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의리역 보다는 상수역이 더 의미 있고 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을 갖고 있다. 주역을 이 시대 최고의 궁극적 영원한 철학이요 최첨단 과학기술이며 인류 최고의 문화재라고 말하며, ‘역은 우주론적 순환론적 자연의 이치를 기와 음양오행에 입각하여 64괘라는 우주 삼라만상의 정보와 변화 이치를 모두 나타낸 학문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제1부 주역 총론에서는 주역의 학문적 개념과 성격 등 주역과 관련한 기초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천역(天易), 서역(書易), 인역(人易)을 설명하고 있다. 천역은 우주운행의 원리가 일월성신의 변화로 나타나는 자연현상 그 자체를 말한다. 서역은 우주운행의 원리를 복희, 문왕, 주공, 공자께서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서 글로 구체적으로 체계화하여 쓰인 역이다. 인역은 서역을 배워서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규범으로 삼는 역이다. 또한 역은 변화와 불변 그리고 그 두 상황에 대한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역(簡易)의 세 가지 뜻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2부는 주역학의 학문적 체계와 인식모형을 설명하고 있다. 제9장 주역학의 학문적 체계 장에서는 기초주역학과 응용주역학, 주역철학 등을 소개하고 있다. 기초주역학으로는 태극론, 음양오핼론, 삼재론, 사상, 팔괘, 육십사괘론 등을 설명하였다. 응용주역학으로는 동양오술로 알려진 명(命), 복(卜), 산(山), 현(賢), 상(相)과 천문기상, 수학, 율려, 무용 등으로 구성되는 상수역과 유가, 도가, 묵가, 제자백가, 성리학 등의 의리역을 설명하였다. 주역철학으로는 송(宋) 대의 장재(張載)와 같이 기를 궁극적인 실체로 보는 학설인 유기론(唯氣論), 청대 왕부지와 같이 기(器)를 궁극적인 실체로 보는 학설인 유기론(唯器論), 신으로 보는 신화로(神化論) 즉 유신론(唯神論), 왕수인과 같이 마음으로 보는 유신론(唯心論), 주자와 같이 도와 리로 보는 입장인 유리론(唯理論)을 소개하고 있다. 주역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氣, 器, 神, 心, 道, 理임을 설명하고 있다.
제10장 주역의 학문적 인식모형에서는 주역학 학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오운육기에 바탕을 둔 동양오술, 인간 사물과 지기와의 관계를 고찰하는 풍수지리학, 인간과 신의 관계와 신들 상호간의 관계에 관련된 학문과 의식들인 민속 신앙, 인간의 주관적인 심과 그 외의 모든 것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수행공부를 설명하고 있다. 윌슨(Wilson)의 『통섭(Consilience)』를 번역한 최재천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통합적 지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본래 지식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파편적 지식이 아니다. (중략) 본래 하나인 통일적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다. 통일적 지식이란 동일 학문 영역 내에서 각 전문분야의 통합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자연 현상에 통용될 수 있는 통합적 지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최재천 교수의 이 말에 나도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통합적 접근이란 체계공학(system engineering)의 기본 철학이며, 통합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주요 관점이기도 하고, 주역과 음양오행론 등 동양철학의 기본 철학인 것이다.
제3부 주역학의 기본개념과 이론에서는 대만의 남회근(南懷瑾) 선생의 『易經雜說』의 내용을 인용하고 김석진 선생의 스승이신 야산 이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주역공부의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야산 선생은 “주역을 아무리 배웠더라도 점과 술로써 내놓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주역의 이치가 오묘하다 할지라도 점과 술로써 내놓지 않는다면, 몇몇 사람의 전유물일 뿐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상수역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제3부에서는 태극론, 산재론, 천일합일론, 오운육기론, 음양론, 오행론 등 기본 이론들과 氣·器·神·道·理·心을 제15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오운육기와 사주팔자에 대한 설명한 내용 중에는 명리학과 관련한 흥미로운 구절도 있다. “시간상의 어느 한 시점을 오운육기의 육십갑자로 나타내면 사주팔자가 된다. 이 사주팔자를 음양오행으로 분석하면 그 시간 우주의 기운 또는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이는 그 시간대의 태양계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자미원 28수의 별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명쾌한 설명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사람은 태어난 시점의 우주의 기운을 선천적 운명으로 타고 나며, 이것이 사주팔자로 모델링된다. 후성유전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후 환경에 따라 성격도 변화하고 환경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현대의 발생생물학에서 언급하듯이 태어나면서 환경에 따라 뇌의 단백질 합성이 달라 성격이나 두뇌 지능 등이 결정되고, 후성유전학에서 언급하듯이 유전자의 메틸기가 변화하며 운명이 결정된다기 보다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운명은 역(易)의 원리대로 변화하고, 역술은 이런 특성을 타고 났으니 환경에 이렇게 적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상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명리학은 바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기법을 사용하는 학문으로 시뮬레이션 기반 예측학(simulation based prediction)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해 볼 만 하다.
제4부에서는 주역학 각론으로 동양오술인 명리학(命), 주역점(卜), 의학(醫), 상학(풍수지리)(相), 산학(山)과 천문기상을 설명하고 있다. 권일찬 교수는 정신수양, 심리치료 등 다른 학자들이 선(仙)학으로 언급하는 술(術)을 산(山)학으로 명명하고 있다. 상학(相學)을 설명한 절에서 “상학이란 눈에 보이는 물체 즉 相을 보고 판단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고, 도장을 보고 운을 판단하는 인상(印象), 성명학인 명상(名相), 관상학인 인상(人相), 손금학인 수상(手相), 양택풍수인 가상(家相), 음택풍수인 묘상(墓相)으로 구분하고 있다.
위의 相學들은 서로 공통적인 이론체계도 있지만 각각의 고유한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음택풍수학과 양택풍수학은 손금학과 관상학 만큼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옛날의 주거환경들은 주변의 자연환경에 의해 대부분 지배되고 결정되었으나, 현대 주택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절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양택풍수학은 풍수이론과 더불어 심리학 이론과 의학 이론을 함께 적용해야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찌보면 주거환경이 대체로 open system에서 closed system으로 변경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가 절실해 보인다. 또한 스트레스 등 많은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해서는 산학(山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야 할 것 같다. 서구사회에서는 각양각색의 여러 종류의 심리치료법들을 실험하고 임상에 적용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의 산학을 미신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자세이다.
이 책은 주역학 개론이지만 권일찬 박사의 폭넓은 동양학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다만 서양학과 비교하여 동양학의 우수성을 너무 많이 강조하다보니 중언부언(重言復言)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 옥의 티가 되고 있다. 권일찬 박사의 또 다른 저서의 제목에 들어 있기도 한 미아리철학관에 대해서도 작은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란다. 그래도 동양의 사상, 철학, 과학기술이 모두 주역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서구과학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하여 개념의 정의를 정확히 하고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한 저자에게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저자의 폭넓은 독서량에 놀라며 나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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