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구미시 수다사를 다녀오다.

아진돌 2020. 10. 2. 14:05

2020년 9월 27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여덟 번째 답사지로 제8교구 본사인 경북 김천시 직지사 답사를 마치고, 직지사 말사인 수다사를 다녀왔다. 경북 구미시 무을면 수다사길 183(무을면 상송리 12)에 있는 수다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신라 문성왕 때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峯)에 백련(白蓮)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 967년(광종 18)에는 화재로 인해 극락전과 청천료(淸泉寮)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185년(명종 15)에 각원(覺圓)이 금강문(金剛門) 등 3문(門)을 세우고 극락전과 청천료를 옮겨지었으며, 비로전(毘盧殿)·나한전(羅漢殿)·시왕전(十王殿)·미륵전(彌勒殿)·봉황루(鳳凰樓)와 방사(房舍) 24개, 수선사(修禪社) 등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 때 42성관음대법회(四十二聖觀音大法會)를 9,000일 동안 개설하고 『법화경(法華經)』을 강론하였는데, 승속 수만 명이 참여하였다.

   

1273년(원종 14) 대수해로 극락전·시왕전·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으며, 1572년(선조 5)에 사명당(泗溟堂)이 극락전을 중수한 뒤 대웅전이라 개칭하였고, 청천료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하였다. 또 만세루(萬歲樓) 24칸과 안심료(安心寮), 9개의 대방(大房)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의승(義僧)이 모여 의국법회(義國法會)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1704년(숙종 30)의 화재로 현존하는 건물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면 포대화상이 반겨주신다.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있고 그 밑에는 지난해 떨어져 싹이 튼 은행나무 어린 묘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으로 단장되어 관광객들을 모으는 곳이다. 수다사(水多寺)라 하여 물이 많은 곳에 자리 잡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방문하였으나, 예상외로 물이 많은 건 아니었다. 요사채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입구쪽 앞으로 개울물이 흐르는 등 다른 절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1273년에 대수해로 극락전, 시왕전, 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다는 말이 실감이 안 난다. 절 당우들이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산사태 등으로 해를 입은 것 같다. 답사를 마치고 종무소에 들러 물이 많지 않아 보이는 데 왜 수다사인지를 여쭤보니, 안에 계시던 스님께서 내력을 말씀해 주셨다. 사명대사께서 중창하신 후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중생들을 위해 감로수(水)를 내려 많은 중생(多)들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에서 수다사로 이름을 고치신 것이라고 한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의구심이 확 풀린다. 그렇구나! 水는 불교에서 말하는 감로수이고 多는 중생을 말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웅전은 맞배지붕에 다포식 공포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구조이고 활주가 처마를 받치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1185년에 각원이 조성한 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바로 옆에는 전형적인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인 명부전이 있다. 스님들이 출입하시는 중앙문은 높고 중생들이 출입하는 좌우 문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정도로 문이 낮은 것도 특이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명부전 안에는 각원이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81년에 보수하였다고 한다. 특히 명부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지옥도는 희귀한 벽화로서 상태가 거의 완전한 귀중한 작품이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계곡 건너에는 전면 3칸의 당우를 짓는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건물로 명부전을 닮았다. 전면 기둥 사이 전체를 문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고 명부전의 구조와 같이 기둥 사이에 벽을 설치하고 작은 출입문을 달도록 건축되고 있다. 처마 밑의 단청도 진행 중이었고 벽에는 흙을 바르기 전에 나무 얼개만 설치되어 있다. 이 당우가 완성되면 꼭 다시 와서 보고 싶다. 얼굴빛이 구리빛으로 타셔서 울력을 많이 하신 것 같은 스님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확인은 못했으나 스님께서 직접 짓고 계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