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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이씨 집성촌(성주군 용암면 대봉2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6. 19. 15:38

2021613일에 경북 성주군 용암면 대봉2리 옥천서원 앞쪽에 위치한 성산이씨(星山李氏) 의성공파 집성촌에 다녀왔다. 합천 해인사에 가는 길에 답사 도반이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대봉 2리를 둘러보았다. 농업이 주업이던 시절에 성산이씨 집안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 마을에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이 없어지는 동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자손들이 하나 둘씩 외지로 나가 살게 되고 외지에 나간 자손들이 고향집을 팔면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는 모습이다,

   

동네의 맨 위쪽에는 성주목사로 추증된 이사룡(李士龍)을 배향하며 자제들을 교육하였던 옥천서원(玉川書院)이 자리잡고 있고 동네 입구에는 고목이 있다. 동네를 바라보고 오른쪽 산 봉우리는 태봉이라 하여 조선 태종 이방원의 태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전국의 태실이 훼손될 때 같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동네 입구를 지키던 고목 바로 밑으로는 시냇물이 흘렀다고 하나 지금은 복개되어 있었고 동네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고목이 있는 바로 옆에는 같이 간 도반이 태어나고 자랐던 집인데 동생분이 판 후에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뀐 상태인듯 하다. 지금은 대구에 사시는 분이 주말에 오셔서 주말 농장처럼 이용하고 계셨다. 주인께서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들어와서 보라고 혼쾌히 허락해 주셔서 마당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마당에는 파란 잔디가 깔려 있고 불타버린 행낭채 자리에는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바로 뒤에 예전에 큰집이 사셨던 집인데 지금은 역시 외지인이 수리하여 전원주택으로 꾸며 놓은 상태이다. 나도 옛 고향에 온 듯하여 마음이 찡한데 같이 간 도반님의 마음은 어떨지 짐작이 간다. 고목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던 추억 등을 이야기하며 한참 동안 동네를 둘러본 후 발길을 돌렸다.

 

참고로 성산 이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뒤 태조의 사위가 되고 사공(司空)에 올랐던 이능일(李能一)이다. 그는 성산 일대에서 유력했던 호족출신의 인물로 후에 그 인연을 좇아 성산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성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성산이씨 인구는 2000년도 기준 통계로는 75,210명이다. 성산 이씨의 파는 인주공파, 정언공파, 봉익공파, 기국공파, 금산공파가 있다. 성산이씨 집성촌은 경북 고령군 관동,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경북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경북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경북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 등이 있다. 특히 성주군 월항면에 위치한 성산 이씨 집성촌 한 개 마을은 조선 세종 때인 1450년 처음 형성돼 500년이 넘는 오래된 세거지에 75채의 고택이 들어 서있어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된 곳이다.

 

나무 위키(https://namu.wiki/)에 따르면, 성산 이씨는 경상북도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신라 지방 호족 가문이였던 이능필이다. 이능필은 신라 말기 호족이자, 고려의 개국공신인 벽상공신으로 왕건의 신라 병합을 도왔으며 조물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백제 왕 신검을 군대를 이끌고 추격해 붙잡는 공을 세웠다. 이에 삼한 통일에 기여했음을 칭찬한 태조가 이름에 일(一) 자를 하사하여 이능일(李能一)이 되었다. 고려 건국 이후 태조의 부마가 되고 벼슬은 사공(정1품)에 이르렀다. 훗날 성산백에 봉해지고, 이에 후손들이 성산을 관향으로 삼는다. 현재 성주군청 부근에 시조 이능일의 생가터에 자리한 문중재실로 성산재가 위치해 있다.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이씨는 성산 이씨 이외에도 성주 이씨, 벽진 이씨, 광평 이씨, 경산 이씨 등이 있다. 성주는 가야 시절에는 벽진, 신라 시절에는 성산, 고려 시절에는 경산, 조선과 현재에는 성주로 그 지명이 변화했다.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 성산 이씨와 성주 이씨 등이 같은 씨족으로 착각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고려초 인물 이순유를 시조로 삼는 성주 이씨 등의 성주군을 관향으로 삼는 다른 성씨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연원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