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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하동 쌍계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6. 26. 18:14

2021년 6월 20일(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13번째 답사지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화개면 운수리 208)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에 다녀왔다. 쌍계사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수행을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염불원(念佛院)을 모두 갖춘 쌍계총림의 중심 사찰이다. 지리산 반야봉 밑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화개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하동군 화개면에 있다. 예전에는 화개천 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나는 데 지금은 일주문 밑에 사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전형적인 산지가람의 가람 배치에 따라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9층탑과 팔영루를 만나다. 일주문부터 팔영루, 대웅전, 금강계단까지 층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예전에는 누각을 지나 대웅전이 보이도록 되어 있으나 지금은 누각 밑의 공간을 막아 놓아서 옆으로 돌아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대웅전 마당에는 국보 제47호 진감국사대공탐비(眞鑑國師大空塔碑)가 있다. 계단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에는 정면에서 볼 때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고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아미타 부처님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약사여래 우측에는 일광보살이 모셔져 있어서 불단이 웅장하다.

 

예전에는 대웅전 뒤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지금은 금강계단이 있고 금강계단 옆에는 목판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고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화엄전이 있다. 화엄전 옆으로는 삼성각이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삼성각이 정면 3칸으로 규모가 크게 모셔져 있다. 팔영루에서 왼쪽 옆으로 돌아가면 금당 입구이다. 108계단 위에 육조 혜능 조사의 정상(頂相, 머리)을 모셨다는 금당이 있으나,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부터 3개월, 동안거가 끝난 후 3개월 동안에는 개방한다고 한다. 팔영루 왼쪽 마당에는 은행나무 고목이 있고 마당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바위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커다란 밑동이 바위 위에 놓여 있어도 그 많은 태풍 등을 무사히 이기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쌍계사 홈페이지(http://www.ssanggyesa.net/)에 게시된 소개글에 따르면,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 스님의 정상(頂相, 머리)을 모시고 귀국하여,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출처 : 쌍계사 홈페이지)

 

육조 혜능 스님의 정상(頂相)은 남종선의 태두인 육조 혜능의 머리를 실제로 잘라 와 모셨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선법 정신의 당체인 머리 부분을 해동 신라로 옮겨와 모심으로써 이 땅의 선법이 그의 정수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이해된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암(國師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이 절은 성덕왕 23년(724년)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50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된 명부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팔상전, 노전(爐殿),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로 지정된 적묵당(寂默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된 설선원(說禪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나한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육조정상탑전과 청학루(靑鶴樓)가 있다. 그리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천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금강문(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된 일주문·대방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 보물 제380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925호인 팔상전영산회상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인 불경책판이 있다. 대공탑비는 885년(헌강왕 11) 헌강왕이 입적한 혜소(慧昭)에게 진감(眞鑑)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대공영탑(大空靈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어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887년(진성여왕 1)에 완성되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 이밖에도 육조혜능의 초상화를 안치한 7층의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지정된 마애불(磨崖佛)과 아자방(亞字房)의 터가 있다. 절에서 500m 거리의 암자인 국사암(國師庵) 뜰에는 진감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았다는 천년이 넘은 느릅나무 사천왕수(四天王樹)가 있고, 신라의 원효(元曉)와 의상이 도를 닦았고 1205년(희종 1)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그 시호를 딴 불일암(佛日庵)이 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쌍계사(雙磎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