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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하동 칠불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6. 26. 18:17

2021년 6월 20일(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13번째 답사지로 쌍계사 답사를 마치고,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화개면 범왕리 1605)에 칠불사(七佛寺)에 다녀왔다. 쌍계사에서 화개천 원류를 따라 골짜기를 한참 올라가면 쌍계사 말사인 칠불사를 만난다. 지리산 칠불사(智異山 七佛寺)라고 적힌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면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仙院)이라는 현판이 있는 보설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문수전이 있다. 대웅전 왼쪽에는 아자방이 있으나 발굴조사 중이라 볼 수가 없었다. 아자방은 한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한다. 한번 불을 때면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세 개의 아궁이에 넣어 한꺼번에 땐다고 한다.

 

사찰 안내문에 따르면 1948년 여순사건 때 아자방을 비롯한 모든 당우들이 불에 타버린 후 30여 년간 버려져 있다가 제월통광 선사가 1978년부터 20여 년간의 불사로 새로 건축한 건물들이라 당우들은 깔끔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6·25전란으로 인해 1951년 1월경에 전소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사찰 안내문에 있는 내용 즉, 1948년 여순사건 때 전소되었다는 내용이 맞다고 본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 뒤에는 탱화 대신 금동으로 제작한 부조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문수전이 별도로 있어서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우측에는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출가한 일곱 분의 아드님들을 보기 위해 오셨다가 만나지 못하고 연못에 비친 얼굴을 보고 돌아갔다는 영지(影池)가 있다. 똑같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영지가 합천 해인사에도 있다. 영지로 들어오는 물은 지리산 꼭대기에서 나오는 물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다. 칠불사를 방문하는 분들은 꼭 드셔보기를 권한다.

 

칠불사 홈페이지(https://www.chilbul.or.kr/)에 따르면 칠불사는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며, 문수보살의 상주 도량이고, 동국제일선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칠불사는 지리산의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은『옥룡자결』(玉龍子訣)에 의하면 지리산 칠불사는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으로, 제일의 양택이라고 했다. 임진란에 퇴락한 가람을 서산대사와 부휴대사가 중수하였다. 그 후 1800년에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미타전, 벽안당(亞字房), 칠불각, 설선당,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는데 대은율사와 금담율사에 의해 모두 복구되었다.

 

칠불사는 1세기경에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숙인 범승(梵僧)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따라와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김수로(金首露) 왕이 국력으로 창건한 사찰로서,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화생(化生)하였으며, 남해바다를 통해 가락국에서 온 인도 항하 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하였다. 그들은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 칠불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이 칠왕자의 성불로 인하여 칠불사라 하였다.

 

이 외에 칠불사 경내에 있는 영지(影池)와 칠불사 인근 지역에 남아있는 명칭 등을 통해서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알 수 있다. 칠불사의 영지는 칠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연못이다.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왕자를 보려 하자 장유화상은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꼭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 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김수로왕 부부는 연못을 만들어 놓고 그 연못을 보니 과연 일곱 왕자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를 보고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이 연못을 영지라 부르게 되었다. 또 칠불사 인근 마을의 명칭인 범왕(凡王)마을과 대비마을도 칠불사가 가야불교의 성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범왕리라는 명칭은 김수로왕이 칠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무른 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 화개면 정금리의 대비마을(大妃洞)은 허황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머물렀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출처 : 칠불사 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칠불사는 6·25전란으로 인해 1951년 1월경에 전소되었다. 27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것을 제월통광(霽月通光) 스님이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칠불사 중창불사를 수행하여, 1978년 문수전을 시작으로 대웅전・설선당・요사채를 차례로 복원하고, 1983년 아자방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운상선원을 복원하였고, 1995년 칠불사 사적비(寺蹟碑)를 건립하여 중창불사 사적을 남겼다. 이후 2009년에 선다원(禪茶院)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문수전・설선당・운상선원・아자방(亞字房)・원음각・보설루・선다원 등이 있다. 이중 아자방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로서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曇空和尙)이 아자형으로 축조하여 만든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고치지 않았지만 한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한다. 한번 불을 때면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세 개의 아궁이에 넣어 한꺼번에 땐다고 하며, 화도(火道)가 막히지 않고, 높고 낮은 곳이 고루 따뜻하였다고 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불암).